▲ 황혜영교수

가르통 르루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영화 ‘오페라의 유령’(조엘 슈마허, 2004)은 파리 오페라하우스의 지하 세계에 머물며 보이지 않게 오페라의 운영을 지시하는 전설적인 유령의 이야기다.
자신의 괴물 같은 얼굴을 가면으로 감추고 다니는 그는 아름다운 가수 크리스틴에게 음악적 영감을 주며 한 번은 그녀를 자신의 지하 세계로 이끈다. 그녀는 유령에게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영혼은 그에게 매혹된다. 지상에 돌아온 그녀는 어릴 때 알고 지냈던 라울과 사랑하게 되는데, 이를 질투한 유령은 ‘돈 주앙’ 공연에서 배우 대신 가면을 쓰고 무대에 올라 크리스틴과 열정적인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
하지만 크리스틴은 무대 위에서 그의 가면을 벗겨 유령의 얼굴을 폭로한다. 격분한 유령은 천정의 샹들리에를 떨어뜨려 관객을 공포에 빠뜨리고, 그녀를 지하로 납치해간다. 지하로 뒤따라온 라울은 유령의 포로가 되고 그녀는 라울의 죽음과 유령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게 된다. 그녀는 이때 유령의 외로움을 보고 그에게 진심을 담은 키스를 해준다. 감동한 유령은 그녀를 라울과 떠나보내고 자신도 영원히 자취를 감춘다.
추한 외모의 남자(야수)와 아름다운 여인의 사랑의 테마는 여기서 뿐만 아니라 ‘미녀와 야수’, ‘킹콩’,‘노트르담의 꼽추’같은 작품들에서도 볼 수 있다. 왜 아름다움과 추함은 서로 이끌리는 것일까?
유령이 사는 어둡고 축축한 지하 공간은 꿈과 환상, 밤과 그림자의 세계,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무의식과 은밀한 욕망의 세계를 상징한다. 유령은 빛과 낮, 이성과 사고의 틀로부터 크리스틴을 해방시키고 부드럽고 우아한 ‘밤의 음악’의 애무로 감각과 감성이 다스리는 어둠의 세계로 이끌어준다.
유령의 세계는 그녀가 현란하고 무감각한 낮의 빛으로부터 시선을 돌려 밤으로 향할 때, 눈을 감고 정신이 날아오르도록 놓아줄 때, 비로소 그녀의 영혼이 도달하게 되는 여백과 여유, 침묵의 공간이다.
유령의 추함이 상징하는 어둠은 역설적으로 아름다움으로 형상화되고 있는 낮이 편안한 안식을 얻는 곳이다. 유령의 추하고 비틀린 외모는 사실 사물의 형체가 허물어지고 무한한 감각적 상상이 펼쳐지는 밤의 어둠, 비이성적 영역의 은유적인 이미지다.
반면 어둡고 그늘진 곳에 사는 유령은 빛과 아름다움의 세계를 은밀하게 갈망한다. 크리스틴은 바로 그가 만드는 밤의 음악에 빛과 아름다움의 힘을 불어넣는 존재다. 빛을 찬란하게 드러내주고 그 자신 빛이 되고자 꿈꾸지만 빛이 될 수 없는 숙명을 타고난 어둠처럼, 아름다움에의 내밀한 욕망을 간직한 채, 아름다움에 생기를 불어넣어주기는 하나 영원히 아름다움 자체가 될 수는 없는 추함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오페라의 유령의 숙명이다. 기괴하고 비정상적으로 비뚤어지고 일그러진 유령이 햇살까지 녹아드는 어둠처럼 슬프고 숭고한 눈빛을 가지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거울에 비친 크리스틴의 모습 뒤에 어렴풋이 비친 유령의 모습이 바로 그녀 뒤에 가려진 낯선 자아의 이미지이듯이, 크리스틴은 유령이 내밀히 꿈꾸어온 이상의 모습이다.
호기심에 이끌려 판도라와 델릴라와 같이 유령의 얼굴에서 가면을 벗겼을 때, 그의 흉한 얼굴에서 그녀가 본 것은 오히려 진정한 사랑과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숭고한 영혼의 외로움이다.
그리고 그녀가 유령에게 키스를 해주자 잠들어 있는 싹이 꽃피고, 정열의 불꽃이 타오르며, 두 영혼이 하나 되는 ‘되돌아갈 수 없는 점’을 넘는다. 공포도 매혹이 되는 어둠 속의 유령을 뒤로 하고 빛과 안정을 약속하는 라울에게로 돌아가도 그녀의 영혼은 언제나 유령과 함께 지하에 남는다. 그들이 나눈 영혼은 영원에 속하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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