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자 수필가] 휘영청 달 밝은 정월 대보름날을 넘긴 첫 새벽에 장독대에서 들려오던 소리는 바삭 마른 낙엽을 밟는 소리처럼 들렸다. 정화수 사발을 앞에 두고 손바닥을 비빌 때 어머니의 거친 손에서 나는 소리였다.

초저녁부터 깡통을 돌리며 쥐불놀이를 할 때 불장난이 심하면 오줌을 쌀 것이라는 경고를 여러 차례 받았었다. 그래서 잠이 들긴 전에 여러 번 단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다 말고 또 일어나 뒷간을 다녀오려다가 봤던 유년기의 새벽 풍경이다. 매년 보름날 아침이면 누런 갱지 반장을 배급받았다. 거기에 나이 수만큼 밥을 떠서 담으라는 명을 받았고 그것을 행한 후에야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이것이 필자가 기억하는 유년기 대보름날 아침 풍습이었다. 밥을 먹고 나서 대문 밖에 나와 보면 새떼들과 동네 개들이 근처를 얼쩡거렸고 땅바닥에는 종잇조각이 나부꼈다. 아마도 던져 놓은 밥만으로는 허기를 다 채우지 못해 행여나 먹을 것을 더 주려나 하는 기대가 있어서 차마 집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머니가 빌었던 기도는 미뤄 짐작하건대 가족의 건강과 남편, 자식에 대한 무탈함이 담긴 염원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보름 명절을 전후해 빌었던 기도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안위를 빌었을 것이고 더 나아가서 우리나라가 부유해져 먹을 것이 풍부해지길 간절히 바라는 기도가 추가됐을 것이다. 땅에 씨를 뿌릴 때는 세 개의 씨앗을 뿌린다고 한다. 하늘을 나는 새를 위해 한 알, 땅속 벌레를 위해 한 알, 그리고 땀 흘린 농부를 위해 한 알을 심는데 누구도 홀로 살 수는 없으므로 하늘, 땅, 사람을 마음에 새기며 심는 것이라고 한다.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에 내가 먹을 밥을 누군가와 나누려는 마음이나 세 알의 씨앗 심기로 작은 미물까지도 배려하며 나눔을 실천하려는 마음은 서로 어우러져 잘 살아가고 싶은 꿈이 담긴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먹을 것이 넘치고 음식쓰레기 배출량이 날로 증가하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 예전에 행했던 이와 같은 아름다운 풍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 동네에서 밥을 담은 종이를 던졌다가는 무단 쓰레기 투척 범으로 죄인 취급을 받을 것이고 그것을 먹어 줄 개는 집안에서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됐다. 정치면과 사회면은 매일 충격적인 뉴스거리로 가득 차고 설 명절을 보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가족 간의 총기 난사 사건도 벌써 두 건이나 벌어졌다.

국가, 국민, 가족이 알맞게 어우러지는 소우주의 꿈은 절대로 쉽지가 않은 모양이다. 사회 초년생으로 직장을 다니게 된 자식과 집을 떠나 타국에서 한 해를 보낼 자식의 안위를 생각하며 아파트 북쪽 베란다에 나만의 장독대를 꾸렸다. 우물물 대신 정수기 물을 담을 사기그릇을 준비해 새벽잠을 쫓아야 하는 정화수 신앙을 실천해보려고 한다. 가끔은 세상을 향해 기도할 것이며 미미하나마 나눔 실천도 해볼 생각이다.  '간절하게 바라면 이루어질까에 대해 의심하지 말자' 이것이 첫날 바친 기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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