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영 서원대 교수] 성경을 읽다보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있는데,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여리고성을 함락하는 일련의 과정에서도 그렇다. 여리고성 사건에 대한 어느 설교에서 필자에게  특별하게 와 닿은 장면이 두 군데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여리고성과의 전쟁을 앞두고 모든 이스라엘 장정들에게 할례를 받게 한 것이다.
 

홍해에서처럼 요단강도 갈라졌다든지 거대한 성이 함성소리에 무너졌다든지 하는 장면들에 비하면 별 대수롭지 않게 지나칠 수 있는 있겠지만 왠지 이 장면에 특별히 관심이 갔다.
 

할례는 알다시피 포경수술과 같은 것인데, 전쟁을 앞두고 왜 하필 할례를 행하게 했느냐 하는 점이다. 견고한 성 앞에서 무기를 점검하고 체력을 돋워도 모자랄 할 판에 군사들에게 며칠 동안 상처가 회복되도록 기다리게 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하지만 때로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숨겨진 진리의 한 알레고리를 보여주면서 삶의 지혜와 조언을 주기도 하는 것 같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쟁은 물리적인 싸움 이전에 무엇보다 영적인 전쟁이다. 영적인 전쟁에서 무기나 육체적인 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는 것이다. 할례는 원래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확인하는 의식이다. 광야 생활 40년 동안 중단됐던 할례를 되살림으로써 400년간이나 이집트의 노예로 살아오면서 몸에 밴 노예근성, 스스로에 대한 불신과 열등감을 끊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온전한 자아 정체성을 세우는 것, 그것이 그들에게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여리고성은 눈에 보이는 적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심리적인 위축감, 이스라엘 백성 스스로가 자신에 대해 가진 불신과 좌절, 열등감으로 인해 왜곡된 정체감을 상징한다.
 그

렇다면 여리고성 이야기는 비단 수천 년 전의 먼 민족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리고성은 외부에서 오는 압박과 타인으로부터 받는 상처,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욕심과 이기심, 시기와 분노, 좌절감과 패배감, 열등감과 교만, 도덕적 헤이 같은 아성에 다름 아니다.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쉽게 상처받는 약한 자아 그리고 나 자신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부정적인 인식의 견고한 성을 함락시키고 본연의 건강한 자존감과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 그것은 영적 할례와도 같다. 왜곡되고 부정적인 자아인식을 끊고 건강한 자존감과 건전한 정체감을 세우는 정신적인 할례, 그것이 지금 내 안의 여리고성을 마주하며 해야 할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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