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윤 건양대 병원경영학과 교수

[안상윤 건양대 병원경영학과 교수] 지난 해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킨 프랑스 경제학자 피케티는 최근 극단적 양극화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일부 수정한다고 발표했다. 맨큐를 중심으로 한 미국 자본주의 경제학자들의 송곳 비판에 대해 일단은 자신의 오판을 시인한 셈이다. 그러나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주가 그 자체적으로 큰 결함을 품고 있다는 논지(論旨)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한 사회의 이념체계를 뒷받침하는 것은 그 사회를 구성하는 대중들의 가치체계, 즉 공통의 정신이다. 다수 대중들의 정신이 이념체계를 널리 수용하고 지지하면 그 사회는 안정된다. 반면 정신이 이념체계를 부정하기 시작하면 사회 공동체에 균열이 생기고 갈등양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한국 사회의 자본주의 정신이 과연 건강한지에 대한 진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 사회를 통합하는 정신은 일시적 유행이나 제도의 강요에 의해 형성되지는 않는다.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는 생활방식과 경험, 지속적인 교육에 의해 이뤄진다. 따라서 이념체계를 뒷받침하는 정신은 역사적 산물이며 동시에 문화의 결정체다.

오늘날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500여 년 전 유럽의 중세 봉건영주체제나 신권에 대한 대중의 저항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그것은 대중들도 누구든지 열심히 일해 소득을 높이고, 남는 돈을 저축해 재산을 늘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루터는 종교개혁을 통해 그것이 진정한 신의 뜻이라고 대중의 재산증식 의지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국가는 이러한 대중의 자유로운 경제행위가 소득증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법률로 지원할 책무를 지고 있다는 것이 유럽 자본주의의 전통이다.

오랜 역사 속에서 굳어진 '시간은 돈이다', '신용은 재산이다', '근면해야 돈을 번다' 는 등의 가치관은 변함없는 자본주의 정신이면서 도덕적 훈계다. 이런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핀란드, 스위스, 네덜란드와 같은 나라들은 세계적인 대기업 없이도 1인당 국민소득이 4만 달러 이상이면서 높은 행복지수를 자랑하고 있다. 이들 나라는 소득의 분배율이 80%가 넘지만 한국의 소득분배율은 60% 정도다.

낮은 분배율이 보여주듯이 갈 수록 심화되는 양극화로 인해 한국에서 자본주의 정신은 시들어가고 있다. 다수의 서민들은 열심히 일하는 것과 소득증대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좌절에 빠져들고 있고, 반면에 정직하지도 않고 신용을 지키지도 않는 특수계층의 사람들은 평생 놀고먹으면서도 엄청난 부를 축적하는 것이 목격되고 있다.

특히 자본주의 정신은 재벌이나 대기업들이 무조건 자신들의 배만 불려도 좋다는데 절대로 동의하지 않는다. 유럽의 대기업들은 하청업체 근로자들의 임금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을 모르는 체 할 정도로 부도덕하지 않다.

그러나 한국에서 많은 대기업들은 귀족노조와 합작해 하청업체들의 목을 너무 조이고 있다. 이런 갑(甲)질이 아무리 천민적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지금처럼 우리 사회 전반에서 자본주의 정신이 놀림감이 되는 한 국가의 건강한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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