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회 청주 용담명암산성동장

▲ 김복회 청주 용담명암산성동장

[김복회 청주 용담명암산성동장]사무관 임명을 받기 위한 절차로 전북 완주군에 있는 지방행정연수원에서 6주 동안 교육을 받았다.
 
낯선 지역에서의 교육으로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이다.

전국에서 모인 교육생들과 생활하면서 우리나라가 작은 반도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각 지방별로 언어와 풍습이 조금씩 아니 많이 달랐다.

특히 말은 잘 알아들을 수가 없어 대화 도중에 뜻을 몰라 되묻기가 다 반사였다.
 
지역적인 특색이 달라 현장 학습을 통해 지리도 많이 익히는 기회가 됐다.

작은 한반도가 아니라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부족함 없는, 살기 좋은 곳임을 새삼 느꼈다.
 
교육은 대부분 분임별로 이뤄졌다.

시도별로 골고루 섞여 있어 인적네트워크에 최적이다.

각 자치단체의 인사적체로 우리 분임에서 3명이 올해 안에 퇴직을 한다. 그에 따른 사연들도 참 많다.
 
강의가 끝나고 남는 시간을 분임별로, 시군별로 회식을 많이 했다.
 
오랜만에 업무를 떠나 자유로움을 만끽하기 위함도 있고 관리자로서의 각오나 나아갈 길을 허심탄회하게 나누기 위함이었다.
 
전주시와 완주군 경제에 일정부분 기여를 한다는 자부심으로 많은 교육생들이 회식에 참여했다.

연수원을 이전한지 얼마 안 돼 식당이 몇 개 없어 식당마다 교육생으로 가득 찼다.
 
한참 분위기가 익어갈 즈음, 노랫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것도 젓가락 장단을 맞추며 말이다.

노래가 계속 이어지자 주인장에게 조용하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이도 있었지만 필자는 그 노래가 참 좋았다.

노래가 70년도 전후에 불렀던 유행가였다.
 
돌아가며 흘러간 옛 노래를 부르고 젓가락으로 상을 두드리며 장단을 맞추고, 간간이 추임새를 넣어가며 부른다.
 
노래방 문화가 유행한 이후 이렇게 식당에서 노래 부르고 듣는 것이 얼마 만인가!
 
그것도 60~70년대의 노래를. 잘은 모르지만 소리의 고장인 전주에서 온 직원들이 아닌가 싶다.
 
흘러간 노래가사를 들으며 어느새 70년대 고향의 향수에 젖어든다.
 
친구들끼리 모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 가사를 받아 적으며 함께 따라 불렀었다.
 
노트에는 그 당시 유행했던 유행가 가사는 거의 적혀 있었을 것이다.

농한기엔 동네 사랑방에 모여 그것도 2절까지 합창을 하고, 돌아가며 독창도 하고 지금은 각자 18번이 된 애창곡도 한 두곡씩 불렀었다.
 
가사의 의미와 뜻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한번은 친구 집에서 밥상을 젓가락으로 두드리며 노래 부르다 얼마나 흥이 났으면 상이 다 파여 그 친구 어머니께 크게 혼나기도 했었다.
 
그때 우리들에게 소중했던 것은 단연코 라디오였다.

아버지가 처음 라디오를 사오셨을 때 정말 좋았다.

부피가 크고 건전지를 넣어서 사용해 꽤 무게가 나갔는데도 일을 할 때마다 보자기에 싸서 들고 다녔다.
 
지금은 텔레비전에 밀려 골동품 신세지만, 그 당시엔 정말 소중했던 우리들의 친구였다.
 
나이가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하지 않는가.
 
이번 교육도 필자에게 소중한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되겠지만, 교육 중 70년대 유행하던 옛 노래를 선물 받은 기억은 잔잔한 물결로 가슴에 남아 살아가는 내내 마르지 않는 추억의 강으로 출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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