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몸은 평소에 늘 가까이 있었지만 마음으론 멀지도 가깝지도 않던 아버지, 솔직히 말해 군대를 가면 훈계도 안 받고 서로 편할 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직접 군대를 와서 하룻밤 하룻밤 내무반 침대에 누울 때마다 당신의 얼굴이 아른거렸습니다.
 

초등학교 때 주말마다 직접 끓여주셨던 라면, 목욕탕에서 형이랑 셋이서 서로의 등을 밀어줬던 따뜻한 기억들…. 행복했던 과거의 추억들이 떠올라 흠칫흠칫 저도모르게 눈물이 나올 때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아버지, 사랑하는 아버지, 군대에 있으면서 저는 당신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습니다. 저에게 화를 내시거나 훈계를 하실 때는 싫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많이 부족한 저를 위해서 하신 말씀이었는데 짜증만 내서 죄송했어요. 아버지, 우리집을 듬직하게 지켜주신 아버지, 일본사람이라 군대 경험이 없으셔서 제가 우리집에서 처음으로 군입대한다고 했을 때 많은 조언을 못하셔서 속상하셨지요? 그러나 속상해하거나 걱정하시지 마세요! 아버지는 제게 더 큰 것을 행동으로 가르쳐주셨습니다.
 

아버지, 매일 출근을 하심에도 불구하고 저녁에 퇴근하시면서 왕복 2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달려서 몸이 약하신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집에 오실 수 있게 차에 태워다주시는 모습을 보고 저는 참된 사랑을 배웠습니다.
 

또한 비록 일본사람이지만 일본이 정의롭지 못할 때는 공개적으로 비판하시고, 한국어와 한국역사를 한국사람보다 더 잘 아실 뿐 아니라 당신의 생각을 신문에 기고하셔서 늘 한국의 입장을 옹호하시고 응원하시는 아버지, 한국과 한국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저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아버지, 저는 이제 막 이등병을 달았지만 지금까지 아버지가 하셨던 말씀과 행동을 마음에 새겨서 남은 군생활 꿋꿋하게 잘 지내다가 더 멋있고, 더 듬직한 아버지의 자랑스럽고 늠름한 아들로 몸 건강히 제대하겠습니다. 오늘 수료식 와주셔서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아버지…."
 

지난 주 신병훈련을 마치고 자대배치 받는 날, 아들이 부대에 면회를 간 필자에게 직접 쓴 편지를 읽어줬다. 아버지가 일본사람이라는 것 때문에 사회에 나가 더 고생할까봐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엄하게 키운 탓에 아버지와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들을 부러워하고, 늘 아버지의 사랑에 목말라했던 아들.
 

일본놈의 자식이라고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내게 걱정 끼치지 않으려고 이야기도 하지 않던 아들. 그러던 네가 이제 의젓한 대한민국 군인이 돼 '조국'을 지키러 가는구나.
 

너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아빠도 더 노력할게. 고맙고 미안하고 자랑스럽다. 그리고 사랑한다. 내 아들….

/도쿠나가 충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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