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희 시인

[충청일보]"글 쓰는 사람은 손가락도 예쁘게 뻗고 쓰나요?" 
 

느닷없는 후배의 질문에 어안이 벙벙했다.

무슨 말이냐 물으니, 지금 새끼손가락 하나를 뻗치고 글씨를 쓰고 있기에 하는 말이란다.

가끔씩 마이크 잡는 모습을 보면 새끼손가락 하나를 편 채, 네 손가락으로만 마이크를 모아 쥐고 말을 하더라는 것이다.

마이크 쥘 때야 예쁘게 보이려고 그러나보다 했는데 글씨를 쓸 때도 여전하니 펜을 예쁘게 잡아야 글도 잘 나오나 해서 물어보는 것이라며 웃는다.
 

'내 속사정을 누가 알랴' 마주 웃으며 손을 내려다보니 새끼손가락 하나가 뻗침새를 하고 있다.

우스운 모양새였겠다.

손등을 위로하여 두 손을 펴본다.

뭐 한 일이 있다고 손마디는 그리 굵직굵직하게 자리를 하고 있는지…….
 

얼른 감추고 싶은 손인데, 마디 굵은 손가락 말석에 새끼손가락 하나가 얄쌍하게 쪽 뻗어 있다.

다른 쪽 손가락에 비해 가늘고, 손마디도 작다.

얼핏 보면 가느다란 것이 괜찮게 생긴듯하나 첫째마디는 아예 없다. 온전치 못한 녀석이다.

이 녀석은 애초부터 그리 생긴 것은 아니다.

살다보니 예기치 않게 불구가 된 것이다.
 

한 20여년 전쯤 되었나?

아이들 어렸을 때 주말이면 먹을 것을 싸 가지고 들로 산으로 나다닐 때였다.

도시에 사는 시누이 네가 틈만 나면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온 때문이다.

그날도 시누이 내외와 남편은 나물을 뜯으러 산을 오르고 나는 아이들은 데리고 계곡에서 점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평화로워 보이는 산이지만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를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 또한 산이다.

아이들에게는 조심하라 이르면서도 정작 나는 하찮은 산비알에서 미끄러져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그 바람에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접질렸는지 자지러지게 통증이 왔다.

겉으로 보기에 멀쩡한데 아프다고 죽는 소리를 하니 엄살이라 여겼는지 면박이 날아들었다.
 

"뭔 여자가 그리 조심성이 없냐"는 남편의 핀잔에서부터, 엄마는 겨우 그런 곳에서 미끄러지냐며 어이없어하는 큰아들 녀석의 눈총을 따갑게 받았다.
 

그 뒤로 며칠간은 집안일을 하거나 손가락이 스칠 때마다 짜르르 통증이 왔다.

그러나 부러진 것도 아니고, 철철 피가 나는 것도 아닌데 새끼손가락 하나 치켜들고 병원 찾는 것도 우스운 것 같아 참고 넘어갔다.

그렇게 한참을 지나다 보니 아픈 것도 수그러들고 차츰 잊고 지냈는데 손가락이 말을 듣질 않는다. 첫째마디는 아예 저 혼자서 구부러지지도 못한다.

다른 손으로 구부려 봐도 튕겨지듯 이내 뻗치기가 된다.

'구부렸다 폈다'를 하지 않으니 신기하게도 마디 자체가 아예 퇴화돼 버리고 말았다.
 

다쳤을 당시 아마 인대가 끊어진 것을 방치한 게 아닌가 싶다. 겨울이 되면 손끝이 찬 것도 그 때문인 것 같다.

가끔씩 손가락을 주무르며 작은 새끼손가락 한 마디의 부재가 알게 모르게 몸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새삼 느낀다.

하물며 더 큰 장애를 가진 몸이야 말해 무엇하랴.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천형처럼 다가온 장애도, 예기치 않은 사고에 의한 장애도 있다.

겉으로 보기에 멀쩡하다고 어찌 다 온전하다 할 수 있겠는가.

몸이든 마음이든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을 크고 작은 장애들, 좀 더 관심을 갖고 덧 들리지 않도록 서로 보듬으며 잘 다스려 나가야 하지 않을까.
 

늘 뻗치기로 있는 새끼손가락이 오늘 따라 애잔해 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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