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현준교수

유명 연예인의 자살에 대한 선정적인 보도나 지면의 할애량에 불만이었는데 이 글 또한 그런 류에 속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부터 앞선다.
쓸 이야기가 없어서는 아니다 한나라당은 습관에 충실하게 이번 쌀소득보전 직불금 국면에서도 노대통령이 은폐했다며 책임론을 들고 나온다. 높아진 양도소득세의 탈루를 겨냥한 직불금 수령은 추궁하기 좋은 재료를 넘겨받은 것이니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하에 이제부터라도 가진자들의 땅투기에 대한 집착을 정책적으로 제어하기 바란다.
내 전공이 인간의 죽음과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어떤 병이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지, 질병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 건강한 삶을 위한 제안으로 발전한다.
암이나 출혈, 혈류의 차단으로 만 사람이 죽는 것은 아니다. 우울증도 심각한 병이고 극심한 분노나 수치심을 유발하는 상황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
교감신경을 자극하고 혈압을 올린다. 자신을 자기 명예와 동일시하는 사람은 수치심으로 인해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살아오면서 더 곤란하고 황망한 상황을 무수히 극복하고 인생의 정점에 이른 사람이 순간적인 착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술에 취하면 더욱 충동과 격정에 사로잡히기 쉽다. 취중진담이라는 말은 틀린 말이다. 취하면 정보가 왜곡되고 판단력이 흐려질 뿐 아니라 비정상적으로 증폭된 감정의 홍수에 쉽게 빠져든다.
나는 우울증과 술이 그녀를 죽게 했다고 생각한다. 증권사 객장에 나도는 노란색 종이 따위에 굴복할 정도로 나약하고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을 테니까. 어떤 인터넷 댓글에 분노했다는 근거도 없는데 그녀의 죽음을 이용해서 인터넷 언로를 봉쇄하는 법안을 제정하려는 정치권력을 보면서 차가워지는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웰빙은 웰다잉까지 포함한다. 내가 과연 잘 살았는지는 죽는 시점에 평가 될 것이다. 구구팔팔 이삼사라고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만에 평화롭게 안상왕생(安祥往生)하는 것이 웰다잉의 전형이 아닐까 싶다.
즉 수명은 충분히 길어야 하고 죽음으로 돌입하는 비가역적인 과정은 짧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최상의 그것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봄·여름·가을·겨울’에서 도력이 높은 노승이 맞이하는 죽음이었다. 어느 날 좌선하는 자세로 숨을 쉬지 않기로 결정하고 몇 분 만에 열반하는 그 장면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실존했던 인물도 있다. 미국의 경제학 교수였고 진보적 지식인으로 농사를 지으며 조화로운 삶을 추구했던 스콧 니어링은 스스로의 건강상태가 나빠지고 있음을 알고,100세 생일을 지낸 후 금식에 들어가서 며칠만인 1983년 8월 24일 스스로 삶을 마무리 하였다.
보고 싶은 지인은 금식기간 중에 만났고 장례의식은 그가 원하던 대로 슬픈 분위기가 아니었고 간소했다고 한다.
존경스러운 생애만큼이나 부러운 웰다잉의 전형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우리나라 의료계에서도 존엄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나는 내 생명이 끝나갈 때 무의미한 연명치료나 소생술을 거부하고 평화롭게 삶을 마감 할 수 있기를 바란다.내가 만약 그것을 거부할 만큼 힘이 남아있지 않다면 미리 작성된 나의 의지가 담긴 서류의 효력으로 의료진의 협조를 받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이 생에 허락된 시간을 감사한 마음으로 충실히 살면서 해야 할 일들, 남겨질 사람들과 사회에 대한 배려와 책임이 웰다잉의 선결 조건이다. 그런 소중한 시간이 충분히 우리 모두에게 허락되기를,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는 모두 안상왕생하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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