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일상생활 속에서 무력감을 느끼거나 가슴 먹먹한 감정이 엄습해 오면 가끔씩 우리는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상생활에서 잠시나마 떨어져 어디론가 여행을 하는 것이 좋은 이유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며 여행은 각각 다른 맛과 질감의 소박한 한편의 드라마처럼 구성돼 지루한 삶에 짭조름하면서 달작지근한 윤활유 같은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지난해 겨울 제주도 올레길의 쉼터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한 가족(아빠, 엄마, 다운증후군이 있는 큰아들, 그리고 막내 아들)을 만났을 때 필자는 신선한 충격을 받아 무척 즐거웠었다. 그들의 삶이 어찌 보면 평범하기도 하지만 독특하고 고마웠기 때문이다.
 

그들은 경북 문경에 있는 초등학교 부부교사였다. 시간이 허락 되는대로 가급적 주말마다 다운증후군이 있는 큰아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세상을 느끼게 하고 타인들과 어우러져 생활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 10년 째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주말여행이 꿈을 간직하고 떠나는 소중한 선물이라고 했다. 필자는 꿈을 지낸 채 좋아하는 것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의 적극적이면서도 긍정적인 삶의 태도가 좋았고 고마웠으며,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남들이 느낄 때 약간 불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큰아이의 건강상태에 아랑곳하지 않고 항상 함께 한다는 사실이었다.
 

우리의 인생은 '어떤 선택을 하는가'와 그 선택의 결정이 '어떤 형태를 이루는가'에 달려있다고 본다. 어떤 사람들은 타인들에게 양보하는 삶을 살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산다. 따라서 어떤 사람에게 선택은 남을 위한 희생일 때가 많다. 다시 말하자면, 배고픈 친구를 위해 도시락을 함께 하는 아주 작은 일부터 생활형편이 녹록치 못한 형제 자매들을 위해 몇 년 동안 모아둔 돈을 양보하는 일까지 내 것을 포기하고 남을 생각하고 챙기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종종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 양보와 배려는 고통이 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남들을 챙기고 돌보느라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어떤 일들을 즐기며 산다는 것, 반복되고 무료한 일상의 노동에서 돈을 벌고 모으지만 나와 누군가를 위해 투자를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문경의 부부교사를 통해 보았듯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무언인가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알게됐다.
 

그저 답답하기만 한 일상생활의 무료함 때문에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내일이라는 소박한 꿈을 위해서 잠시나마 일상을 탈출해보자. 어쩌면 무모한 여정이나 혼자만의 위로감을 맛보는 것보다 우연히 그것도 아주 우연히 타지에서 마주치는 타인들한테서 오히려 나를 위로할 수 있는 동기들을 부여 받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여행은 필자에게 기쁨을 주는 소중한 선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박기태 건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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