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회 청주시 용담명암산성동장

해마다 오월이 오면 친정아버지가 많이 생각난다. 아버지는 들과 산이 온통 푸르게 물드는 오월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평생 농사꾼으로 사신 아버지는 당신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들판을 두고 떠나가기가 못내 아쉬웠을 것이다.

"어버이 살아 실제 섬기기를 다 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 하리. 평생에 고쳐 못 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우리가 애송하는 시 중 하나다. 살아 계실 때 섬기기를 다 하자고 머리로는 늘 다짐하고 있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 하고 아버지를 훌쩍 떠나보낸 뒤, 엄마께라도 잘 해야지 맘먹으며 산지 20년이 됐다.

친정 부모님에 대한 마음은 모든 딸들이 큰 차이 없이 거기서 거기일 것이다. 그런데 난 유별난 시어머님과 3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하고 있다.

직장생활 한답시고 우리 애들도 내 손으로 제대로 거두지 못 해도 어머님께서는 필자보다 더 정성과 사랑으로 길러 주셨다.

지금도 어머님은 오직 며느리 퇴직할 때까지 온전한 정신으로 밥 해주는 것이 제일 큰 사명이라 하시며 84세의 노구임에도 불구하고 귀찮다 하지 않으시고 챙겨주신다. 그 덕분에  필자는 음식을 잘 못 한다. 아니 해볼 생각도 안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임 등으로 저녁 늦게 들어오는 며느리를 위해 내 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과일, 누룽지 등 주전부리를 담아서 슬쩍 올려놓아 두신다.

이런 생활이 오래 지속되자 필자는 어머님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지 못 하고 무감각 해져 어머님이 지어 준 식사를 할 때도 어머님은 이런 저런 말씀을 하시고 필자는 그저 조용히 듣고만 있다.

늘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표현을 하지 못 했다. 지난해 돌아가신 아버님을 난 많이 미워했었다. 가족들에게 너무 무심하고 심지어 손자들에게도 다정다감하지 못 하셔서 손자들 생일과 어린이날에도 선물 한 번 없다는 섭섭함이 엄청 컸었다.

그런데 지금 근무지로 부임하면서 이곳에서 아버님을 아시는 의외의 분들을 만나며 필자 스스로 참으로 편협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 분들 모두가 한결같이 아버님을 훌륭하신 분이라고 말씀하신다. 며느리 자랑, 손자 자랑을 많이 하셨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을 들으며 아버님을 미워한 옹졸함에 부끄러운 나머지 가슴이 먹먹해진다. 필자가 시어머니께 감사함을 표현 못 하고 사는 것처럼 아버님도 속마음을 일일이 표현 하지 못 하고 사신 것일 게다. 필자 스스로도 표현 못 하고 살았으면서 아버님만 원망하며 살아온 것이다.

우리 속담에 '곰보다 여우가 낫다'는 말이 있다. 칭찬과 고마움은 마음속에 두지 말고 끌어내어 표현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이 마음을 실천하기 위해 지난 토요일 외손자 백일잔치에 경기도까지 어머님을 모시고 다녀왔다.

전 같으면 운전하면서 별 말이 없었을테지만,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지역에 대한 설명도 해드리고 주변 경관에 대해 계속 이야기를 해드렸다. 처음부터 많은 욕심을 내지 말고 차츰 관심과 사랑을 직접 전해드리기로 맘먹자 어려운 일도 아니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특별히 잘 해드릴 것은 없지만 말 한 마디라도 정감 있고 따뜻하게 해드리자 맘 먹어본다. 오늘도 우리 어머님의 며느리 바라기는 계속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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