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천명(天命)에는 무엇보다도 사욕(私慾)이 없고 사심(私心)이 없으며 불공평(不公平)이 없는 가운데에서 자연의 순리(順理)를 따름이 천명(天命)이다.
 
그래서 많은 재물을 모았던 그 옛날의 부호나 높은 권력을 누렸던 그 옛날의 군주나 빛나는 이름을 간직했던 그 옛날의 학자들을 모두 칭해 천명(天命)을 부여 받았다고 말하지 않는 이유가 된다.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왔다가 갔다지만 자신의 명(命)으로 불공평과 사심을 채우고 뉘라서 큰 뜻을 이뤘던가? 잠시 잠깐을 얻었던 자신의 기쁨이 만인(萬人)에게로는 통(通)함이 없었으니 통함이 없는 가운데에서 민심(民心)을 득하지 못하고 어찌 천심(天心)을 얻었으리까?
 
하늘에서는 높은 구름이 지나가는데 올 듯 말 듯 오지 않는 비처럼 애닮픔만을 키워 가는 욕심이 한스럽다.
 
차라리 구름 한 점이 없었다면 하늘을 바라보지도 않았을 터이지만 길게 늘어진 시선만이 고개를 떨구게 하는가? 그래서 이제는 다 올랐다 싶었지만 끝내 민심(民心)은 동(動)하지 아니하고 이제는 다 됐다 싶었지만 끝내 하늘은 대답이 없다.
 
이것은 자신을 속이는 사욕(私慾)이 많고 자신의 위선으로 민심을 속이려 했는데 어찌 하늘마저도 속일 수가 있겠는가?
 
자신이야 사심이 없고 공평하다고 말들을 하겠지만 민심은 이미 그 사욕을 바라보면서 흉을 보고 있는 까닭이 있으리다.
 
피었을 때가 기쁨이 크고 그것이 열매를 맺었을 때에는 더욱 기쁨이 크며 생겼을 때가 기쁨이 크고 그것을 베풀었을 때에는 더욱 기쁨이 크다.
 
여기에서 피었을 때와 생겼을 때를 일러서 하나의 명(命)을 받았다고 하고 올랐을 때와 구했을 때에도 명(命)을 받았음이라고 한다.
 
또한 받았던 명(命)이 천지간(天地間)의 이치에서 벗어나지 않고 자신이 인화(人和)의 도리를 다했을 때에는 천명(天命)을 받았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의 이치에서는 재물의 다소(多少)와 권력의 고저(高低)와 명예의 광협 등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에게 주어지는 권력, 재물, 명예 등은 천지간(天地間)의 도리에 해당한다고 볼 수가 없다.
 
즉, 재물(財物)이라는 명(命)을 사람에게 주고 그 사람의 탐욕을 지켜보고 권력이라는 명(命)을 사람에게 주고 그 사람의 남용을 지켜보며 명예라는 이름의 명(命)을 사람에게 주고 그 사람의 교만을 보는 것이지 이것들을 천명이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스로가 깨달음을 얻고 깨달음을 실천하며 깨달음으로 정진해 존재하는 참다움에서 불평등(不平等)이 없고 불화(不和)가 없으며 불선(不善)이 없고 불공평이 없을 때 흐르는 크고 넓은 것을 덕(德)이라 이름을 하고 이러한 덕을 하나의 의로움으로 세월 갈 때를 인화(人和)의 아름다움이라고 한다. 그리고 인화(人和)의 아름다움이 이와 같았을 때 천명(天命)을 부여 받았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 가운데에서 천명(天命)을 남용하는 경우가 많으니 그로써 안타까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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