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희 수필가·前 진천군의원

요즈음 들어 수시로 챙기는 물건이 하나 생겼다. 안경이다.

어느 날 부터인가 시야가 뿌옇게 보인다. 안경 없이 맨 눈으로는 신문이나 컴퓨터를 제대로 읽기내기가 어렵다.

때때로 글씨가 이중으로 겹쳐 보이고, 잔글씨를 대하면 귀찮아 아예 덮기도 한다.

조금 거리가 떨어져 있으면 사람을 확실히 구별을 못하고 가까이 가서야 아는 체를 할 때가 많다.

세전의 때를 잔뜩 묻히고 나이 듦 탓인가.

시력만 떨어진 것이 아니고 총기도 많이 떨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툭하면 잊어버리기 일쑤고, 빨리 판단이 잘 안될 때가 많다. 행동도 굼뜨다.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것이야 몸에 익어서 덜 하지만 정보를 검색하는 것은 젊은이들보다 훨씬 더디고 어둡다.

어느 날 아들로부터 마우스를 붙들고 뭘 그리 생각하느냐는 놀림을 받았다.

그냥 컴퓨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필자도 모르게 모니터에 얼굴을 바싹 들이대고 마우스를 한참씩 그냥 잡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뒤로 필요에 따라 안경을 착용한다.

멀리 있는 것을 볼 때와 가까이 있는 것을 볼 때, 요구되는 양상과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안경도 각각 몇 종류가 된다.

선글라스는 안하무인이다.

원래 제가 지니고 있는 제 색깔로만 세상을 보고 판단한다.

편견과 오류를 범하기 십상이다.

돋보기는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할 때 필요하다.

눈앞의 것들은 크고 선명하게 잘 보이지만 고개를 들어 먼 곳으로 시선을 주면 외려 더 흐릿하다.

안 쓰니 만 못할 때가 있다.

안경을 상시 착용해 보려고 다초점렌즈를 맞춰 써 봤다.

눈앞이 훤하다.

먼 경치가 더 가까이 선명하게 다가와 안기는 느낌이다.

특히 운전할 때는 앞이 밝고 시원해서 좋다.

화장품으로 곱게 치장한 얼굴의 잡티도 여지없이 잡힌다.

세상의 티끌까지 말끔히 잡아낼 듯이 도도한 품새는 예나 지금이 똑같다.

당당하고 똑똑한 모범생 같아 보이는 그 멋에 반해 어린 시절 한때 필자는 눈이 좀 나빴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안경 쓴 친구를 부러워한 적도 있었다.

안경을 쓰니 흐릿흐릿 자신 없던 세상보기에 조금 생기가 돈다.

찡그려 붙던 눈초리가 순해진다. 세상이 제대로 보이기 때문이다.

논어의 위정편에서 공자는 나이 예순을 이순(耳順)이라 했다.

이순은 귀가 순해진다는 뜻이다.

귀가 순해진다함은 어떤 일을 들으면 곧 이해가 된다는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세상을, 삶의 이치를 올바로 보고 들을 수 있는 혜안의 트임이다.

점점 어둑해지는 시야에 대응해서 돋보기에, 다초점렌즈의 안경까지 동원해 세상을 본다. 그러나 안경이란 불편하기 짝이 없는 물건이다.

콧등이 눌리고 건방지게 남의 귀에 다리를 척 걸치고 있는 안경다리는 신경이 쓰이고 머리를 아프게 할 때가 많다.

때때로 눈 감아줘도 될 일까지 사사건건 끄집어내 평지풍파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럴 때면 얼른 벗어서 안경집에 넣어 버린다.

안경을 쓰고 바라보듯 밝고 투명하게 세상을 바로 보고, 또 때로는 안경을 벗어들고 무덕하게 덮어주는 마음의 여유도 있어야겠다.

이 둘의 조화로움이야말로 진정 세상을 밝히는 혜안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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