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영 서원대 교수

방에 조용히 앉았을 때 개구리나 두꺼비, 풀벌레 소리를 들어본지 얼마나 됐을까. 도시 한가운데 아파트에서 생활하다보니 평소 풀벌레 소리와 같은 자연의 살아 있는 소리들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지내왔는데 얼마 전 남도 여행을 가서 묵었던 해남 시골 방에서 얼마나 도시 생활에서 자연의 소리들이 사라져 버렸는지, 얼마나 자연의 소리가 없는 것에 무감각하게 지내왔는지에 새삼 놀라게 됐다.

첫날 여정을 마치고 해질녘에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목욕탕에 들어가 집 뒤 풀밭으로 난 작은 창문을 여는 순간 숙소 뒤 풀밭에서 시끄럽게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들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방에 앉아 쉬는 동안에도 무슨 벌레인지 모르겠지만 여러 종류가 서로 질세라 시끄럽게 울어대고 있었다. 숙소 근처 수련 못과 논개구리나 두꺼비 소리도 거기에 섞여있었는지 모르겠다. 온갖 종류의 살아 있는 작은 생명의 소리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자연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 같았다. 자연에서 나는 자연스러운 소리들이 너무나 강렬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집에 조용히 머물러 있거나 밖에 나다닐 때 자연의 소리 없이 지내왔다는 사실이 낯설고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다 문득 몇 년 전 동해안을 따라 올라가면서 평해에서 백암온천 넘어가는 한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었을 때 숙소 바로 앞의 논에서 두꺼비인지 개구리인지, 혹은 맹꽁이인지 몰라도 평소 들어보지 못하던 소리에 놀랐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도 시끄럽게 논에서 울어대던 개구리 소리 하나만으로도 자연이 숨겨둔 깜짝 이벤트에 초대받은 것처럼 마음이 밝아졌다. 그 후로 오래도록 잊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해남에서 생기가 넘치는 자연의 소리를 다시 듣게 되니 이전에 비슷하게 자연의 소리에 느꼈던 감각이 자연스럽게 되살아난 것이다. 해남 방 텔레비전 볼륨도 죽이고 사방에서 찌르듯 스며드는 작은 생명의 소리에 귀를 내맡겼다. 목청껏 울어대는 소리가 정겹고 귀엽기만 하다. 밤늦도록 시끄럽던 풀벌레 소리들이 아침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완전히 뚝 그쳐 있다. 그러다 다음날 저녁에 숙소에 돌아오니 다시 풀벌레들의 왁자지껄 경쾌한 소리들이 되살아났다.

지금 다시 도시 한 가운데 앉았노라니 익숙한 도로의 차 소리, 경적소리, 어딘지 급히 출동하는 앰불런스 소리, 불특정한 도시의 소음들이 열린 창으로 들어온다. 풀벌레 소리들이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생명의 외침이자 생기의 발로라 생각하니 도시에서 점점 밀려나는 게 더 안타깝다. 감을 감고 아스라한 풀벌레 소리에 다가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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