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숙 열화당책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일 년 전에는 세월호가 온 국민을 슬픔으로 몰아넣더니 지금은 메르스가 나라 전체를 공포의 분위기로 내몰고 있다. 작년에는 애도의 분위기 때문에 모임이나 행사가 취소돼 경제가 어려워졌고, 올해는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외출 자체를 삼가니 경제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여러 모로 세월호보다 메르스 사태가 더 심각하다. 외국에서는 한국인을 반기지 않고 한국을 찾는 외국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 관광업계, 호텔업계, 외식업계, 영화계뿐만 아니라 외국인이 넘쳐나던 명동의 화장품 가게도 전에 없이 한산하다. 불과 한 달도 안 된 시점에 영세 자영업자들은 폐업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메르스의 진원지가 병원인지라 병원을 찾는 발길이 끊기니 병원은 물론 그것과 연관된 약국과 제약회사의 타격도 만만치 않다. 학교도 임시 휴교하면서 맞벌이 부부는 아이들 관리 문제로 힘들어하고 아이들은 갑자기 생긴 여가 시간을 어떻게 쓸지 몰라 PC방에서 소일한다. 세월호 때나 지금이나 정부의 위기 대응 능력, 비상사태 대응 시스템은 도마 위에 오르고, 환자의 안전보다는 사사로운 이익만 챙기는 민간 대형병원의 방만한 운영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자가 격리에 들어간 사람들은 무료함에 뛰쳐나오고 가끔 난동을 부리기도 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생활문화는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하고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고 집 밖으로 나가야만 되는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집에만 있으면 왠지 혼자 뒤쳐진 듯 여겨지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데는 도무지 익숙하지 않다. 얼마 전 세계에서 열 손 안에 드는 갑부들에게 부자가 된 비결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 흥미롭다. 그들은 모두 치명적인 실패를 경험했으나 거기에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선 용맹스런 투사들이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실패 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힘든 순간을 이겨내었다는 것이다. 그 사색의 시간이 지금의 그들을 있게 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우리도 메르스가 가져다 준 피할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 조용히 생각을 가다듬어 보면 어떨까. 이참에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지를 고민해 보는 사색의 시간을 가지는 것도 괜찮을 성싶다. 기왕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잘 대처하고 그것을 잘 활용하는 것도 프로다운 면모다. 골똘히 생각하면, 사태의 잘못을 거론하는 이유는 상대를 책망하기 위함이 아니라 더 바람직한 방향을 찾기 위함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고, 목숨을 건 위험에 맞서 싸우는 의료진과 그 가족들을 소외시킬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격려하는 배려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다 같이 힘을 모아 의연하게 국가가 처한 위기에 대처해 무사히 위험을 넘길 수 있는 길을 찾은 것도 사색의 힘이다. 고독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는 사람, 사색의 시간을 가지지 않는 사람에게는 결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은 없다. 많은 이들에게 비극적이고 가슴 아린 사연을 만들어준 바이러스가 제공한 이 고요한 때 사색의 시간을 가져보자. 사색은 창의적 생각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나를 더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