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희 수필가·前 진천군의원

'속마음 톡톡 힐링 캠프'란 이름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마음을 터놓음으로써 진정한 소통의 기회를 갖고자 마련된 프로그램이다. 참여자는 다문화가정과 새터민주부, 그리고 그들의 매니저를 자처한 한국인 주부들이다.
 
만남의 취지는 국경을 넘어 우리나라로 찾아든 여인들이 보다 쉽게 정착할 수 있도록 손을 맞잡아주는 관계맺음이다. 적응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보는 시각과 문화적 차이 그리고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소통이 충분하지 않은데서 비롯된다. 그러나 마음의 벽을 허물기가 그리 쉬운 일인가.
 
꿈과 포부를 안고 국경을 넘은 그녀들은 분명 용기 있는 여성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베이고 긁힌 상처 또한 적지 않았으리. 상처에 딱지 앉듯 여린 마음이 옹이로 굳어져 스스로 보호막을 한 겹 더 두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와 인연을 맺은 파트너는 오늘 참여를 하지 않았다. 외형으로는 소극적이고 조신해 보이지만 한국인 남자를 택한 연유를 들어보면 분명한 소신과 굳은 심지가 엿보이는 일본여인이다. 이번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도록 권하지 못한 것은 그녀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한 내 탓이 크다는 걸 뒤 늦게 알았다. 여러 사람과 떠들썩한 자리를 즐겨하지 않는 성격에 아쿠아월드라는 장소도 썩 내키지 않았던 모양이다.
 
오늘 새로 만난 파트너 역시 일본 여인이다. 한국에 온지 24년 됐단다. 4남매의 엄마로 점포를 둘씩이나 운영하고 있는 맹렬여성이다. 당당히 한국인주부로 뿌리내린 것을 보면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말보다 느낌이 먼저 와 닿는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으로 향한 곱지 않은 눈초리, 이 땅에서 일본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또 다른 심적 고통을 하나 더 얹고 가는 게 아닌가 싶어 애잔한 마음이 든다. 역사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서로 가까워 질 수 있는 미션이 몇 가지 주어졌다. 둘이 하나 되어 사랑의 포즈 만들기, 귀여운 표정, 행복한 표정 짓기 등 머리를 맞대고 가장 멋진 포즈를 연출하는 행동들은 마음을 열고 하나 됨의 표현이다.
 
미션수행의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공유하면서 그녀의 전화번호를 입력했다. 휴대폰에 저장된 그녀의 이름 앞에 난 버젓이 다문화를 집어넣었다. 그녀가 입력된 자기 이름을 봤다면 이 얼마나 어이없고 가슴 무너지는 일이겠는가.  이름을 쉽게 기억할 수 있다는 편의성을 내세워 그리 분류를 하면서도 내 안의 모순에 갈등이 이는 것도 사실이다.
 
'다문화' 이름도 성도 아닌 것이, 이름 앞에 떡하니 입력되고 있는 이 정체모를 용어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국제 미아처럼 떠돌고 있는 제3의 국적인가.
 
'다문화'의 사전적 의미는 여러 나라의 생활양식을 뜻하지만 '다문화 가정'이란 우리와 다른 민족 또는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총칭한다. 애초부터 우리와 다른 것으로 분류돼 있는 셈이다.
 
새터민의 경우는 더하다. 같은 나라 한민족이면서 다른 나라에서 온 이방인 취급을 받는 그들은 또 어쩌란 말인가.
 
싱그러운 여름, 초록 물속에 입 크게 벌려 하하 웃음을 쏟아내고 온 하루였지만 다시 얹혀 지는 또 다른 체증에 온 몸이 나른해짐을 느끼며 허우적허우적 잠속으로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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