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전 전국을 강타한 '바이코리아펀드'는 국내 주식형 펀드의 전설로 불린다.

    1999년 혜성같이 등장한 바이코리아펀드는 외환위기(IMF)로 위축된 국민에게 '한국(주식)을 사자'라는 애국심 마케팅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채권형 투자 상품이 주류를 이루던 1990년대에 국내 금융시장에서 주식형 펀드로서 인기몰이를 한 것은 바이코리아펀드가 처음이나 다름없었다.

    당시엔 주식 투자는 위험하다는 인식 탓에 증권사들은 당국의 허가를 받아 일정 한도 내에서만 주식형 펀드를 팔 수 있었다. 많이 판 증권사라도 손실이 나면 원금을 돌려달라고 몰려든 투자자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기 일쑤였다.

    그러다 주식형 펀드의 판매 제한이 풀리고 채권이 매력을 잃기 시작하자 금융투자업계가 주식형 펀드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바이코리아도 이때 탄생했다. 계열 분리되기 전 현대그룹의 현대증권과 현대투자신탁이 1999년 3월 내놓은 바이코리아펀드는 4개월 만에 무려 11조원의 자금을 빨아들였다. 이 기록은 전무후무한 판매실적이다. 외환위기 당시 20% 이상의 고금리로 고수익을 맛본 투자자들의 수요와 맞아떨어져 불티나게 팔려나간 것이다.

    1999년 현대투신의 홍보실장을 지낸 이재환 아이앤비넷 감사(전 한화증권 상무)는 "당시 바이코리아펀드의 열기는 대단했다. 자고 일어나면 돈이 쌓여 1주일새 1조원의 자금이 몰렸다. 국내에서 주식형 펀드의 위력을 실감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바이코리아펀드의 행운은 몇 개월 가지 못했다. 그해 대우그룹의 부도로 증시가 급락하자 몰려든 투자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손실을 본 투자자들의 항의가 잇따랐다.

    꽃도 피우지 못한 바이코리아펀드는 16년간 은둔과 고통의 세월을 보냈다.

    이 펀드는 대우사태로 현대투신이 2004년 미국 푸르덴셜금융에 넘어가면서 한 차례 풍랑을 겪었다. 푸르덴셜자산운용은 현대증권이 사용권한을 가진 '바이코리아'라는 펀드명을 '푸르덴셜나폴레옹주식펀드'로 바꾸고 대표 펀드로 운용했다.

    시련은 한 번 더 찾아왔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타격을 입은 푸르덴셜이 해외 자회사인 푸르덴셜자산운용을 한화그룹에 매각한 것이다.

    2011년 9월 푸르덴셜을 합병한 한화자산운용은 1개월 뒤 펀드명을 '한화코리아레전드주식펀드'로 변경하고 대표 펀드로 내세웠다.

    이 펀드는 증시 호황을 맞은 올해 다시 시선을 끌고 있다. 제로인에 따르면 9일 기준 코리아레전드펀드는 올해 647억원의 자금을 끌어모았다. 설정액은 1천618억원으로 집계됐고 연초 이후 수익률은 17.23%를 나타냈다. 이 펀드의 1999년 3월 6일 설정 이래 누적 수익률은 480%를 기록했다.

    현대투신 출신의 강신우 한화자산운용 대표는 13일 "16년 넘는 운용 역사를 가진 바이코리아펀드가 한화의 운영 철학·역량을 결집해 재탄생했다. 성장주나 가치주 등 특정 종목군에 치중하지 않고 내재가치와 장기경쟁력을 갖춘 종목에 투자해 수익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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