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현웅ㆍ소설가
모 업체에서 사들인 물건이 불량품이라서 반품을 하기 위해 그 상표에 있는 기록을 보았다.
반품을 원하면 몇 번으로 전화를 해서 반품 청구를 하라는 표식이 있어 그 지시대로 전화를 했다.
그런데 그 전화의 벨이 울리고 나서 자동응답이 나오는데 결재 변경은 1번을 누르고 카드 지불은 2번을 누르고 가상계좌 신청은 3번을 누르고 반품은 4번을 누르고 소비자 의견 개진은 5번을 누르고 상담원과 직접 통화를 원하면 6번을 누르라고 한다.
그래서 반품에 해당하는 4번을 눌렀더니 한동안 벨이 울리다가 자동응답으로 지금 통화량이 많아서 처리하기 어려우니 잠시 후에 다시 연락하라는 것이었다.
그 지시대로 잠시 쉬었다가 다시 전화를 했지만 마찬가지로 통화량 폭주로 연결이 안된다.
하는 수 없이 6번을 눌러 상담원에게 직접 통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그곳에도 통화량 폭주로 연결이 안된다. 몇 번 시도하다가 짜증이 나서 포기했다. 그렇게 차일피일 여러날이 지난 후에 문득 생각이 나서 다시 반품 시도를 했는데 그때는 반품을 청구하는 유효 날짜가 지나가서 반품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지내놓고 보니 괘씸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4번에 통화량이 폭주한 것이 사실인지 아니면 연결이 어렵게 장치를 해놓은 것인지조차 의심스러워진다.
소비자를 우롱하는 일은 통신업체도 마찬가지이다. 휴대폰에서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아 자동응답 서비스를 사용하려고 하면 처음에 유료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에는 그것 마저도 없었으나 요새는 유료임을 확인해 준다. 다음에는 목소리를 남기고 나면 연락할 전화번호를 남기고 우물정자나 무슨 표식을 누르라고 한다.
사실, 이것은 시간을 끄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전화번호는 자동으로 찍히기 때문에 일일이 전화번호를 누르지 않아도 서비스 할 수 있으며 본인 의사에 의한 전화번호 표식을 원하는 것이라면 전화번호를 모두 누르지 않고 단축키로 빨리 처리할 수 있는 기술적인 일이 가능하다.
그렇게 해서 통화자의 전화 요금을 쓸데없이 내지 않게 해야 하는데 불필요한 주문을 하고 또한 그것을 이행하는 가운데 통화요금이 올라가게 한다.
언뜻 보면 소비자에게 친절을 배푸는 것 같지만 실제는 돈이 올라가는 착취이다. 당사자 한 사람이 10초를 더 쓴다고 해도 겨우 15원이나 20원에 그치겠지만 그것이 1천만명이 되고 일년 내내 사용하여 1억번이 발생한다면 수십억원이 소비되는 것이다.
통신업체들의 이 친절한 서비스는 요금과 연관이 되기 때문에 친절 속에 함정이 있으며 이렇게 해서 소비자들로부터 수십억원을 착취하는 것이라고 의심할 수 밖에 없다.
백화점이나 대형 마켓에는 가끔‘소비자는 왕이다’라고 써붙인 글이 보일 때가 있다. 그런데 왕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붙여 놓은 것이 아닐까 할 만큼 실제 상황은 그렇지 않다. 그‘왕’ 대신에‘봉’이라는 말을 써 넣으면 제격일 것이다.
그래서 다시한번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소비자는 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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