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희 충북대학교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 손가락 등 관절 부위의 과신전.
▲ 이주희 충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제공=이주희 충북대학교병원 순환기내과 교수]건강히 지내던 32세 여자가 갑작스런 가슴 통증을 호소하다가 실신을 한 뒤 의식이 없는 채로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이 환자는 임신 36주의 산모로, 이전에 특별히 진단받은 질병은 없었다. 응급실 도착 당시 환자의 심장은 멎은 상태였으나, 심폐소생술 후 가까스로 혈압과 맥박이 회복되었고, 이후 확인한 응급 흉부 CT에서, 심장으로 연결되는 대동맥의 기시부(대동맥이 시작하는 부위)가 심하게 늘어나 있었으며, 대동맥 박리 (심장에서 박출한 혈액을 전신으로 보내는 역할을 하는 대동맥 벽이 찢어지면서, 혈액이 혈관내강에 있지 못하고 벽 사이로 새어나가는 병) 소견이 보였다.

환자는 급히 수술실로 옮겨져 응급 대동맥 치환술을 받았고, 동시에 응급 제왕절개를 통해 아이를 분만하였다. 산모는 2주간의 중환자실 치료 후 겨우 일반 병실로 옮겨질 수 있었으며, 신생아도 다행히 건강하였다.

이 환자는 키 174 cm, 몸무게 49Kg 으로 매우 마른 체격에 팔다리가 몹시 가늘고 길었다. 오목가슴이 있었으나 생활에 별 불편함은 없었고, 평소 몸이 유연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하였다. 학창시절 체육시간에 남들보다 조금 더 숨이 차기는 했지만 따로 검사를 받아본 적은 없었으며, 과거 눈이 좋지 않아 안과를 자주 다녔던 것 외에는 별다른 병을 진단받은 적도 없었다고 하였다. 아버지 역시 키가 크고 말랐으며, 심장 판막 질환을 앓다가 35세 경에 급사하였다고 했다.

이 산모는 수술 후에야 근골격계 이상, 심장 및 순환기계 이상과 안구 이상을 동반한 말판증후군으로 진단되었고, 현재는 퇴원하여 지속적으로 관리를 받고 있다.

1. 말판증후군이란?
말판증후군은 결합조직 (connective tissue)에 이상이 있는 선천성 질환으로, 손가락이 유난히 길기 때문에 "거미손가락증" 으로도 불린다. 1만명 중 1명 정도로 발생할 수 있으나, 말판증후군 환자의 아이는 50%에서 질병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다. 국내에서는 농구선수 한기범씨와 고인이 된 배구 선수 김병선씨가 말판증후군 환자로 알려져 있고, 미국의 대통령 링컨도 말판증후군 환자로 추정된다.
결합조직이란, 다세포동물의 몸을 구성하는 조직의 일종으로, 주로 세포 사이의 물질을 구성하여 여러 조직과 기관 사이에서 세포들을 연결하는 접착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 결합조직은 온 몸에 분포하기 때문에, 결합조직에 이상이 있는 말판증후군 환자는 여러 기관에서 이상 발육으로 인한 증상을 보일 수 있다. 개인별로 나타나는 증상에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모든 증상이 모두에게 나타나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1) 근골격계 이상
대부분의 환자는 비정상적으로 키가 크고 팔과 다리가 가늘고 긴데, 팔 길이가 거의 무릎까지 내려갈 정도이다. 특히 손가락이 거미 모양으로 긴 것이 특징이다. 근육은 이완되어 있고 관절은 과신전 되어 상당한 유연성을 보인다. 대부분 길고 좁은 얼굴형태를 보이며 입천정이 아치형태를 이루어 이가 밀집되어 있다. 갈비뼈가 과성장하여 흉곽함몰, 돌출, 비대칭 등의 흉곽 기형이 나타날 수 있고, 척추 측만증이나 후만증이 동반될 수 있다. 족저 만곡이 증가되어 있거나 평발이며, 관절은 매우 약하다.

(2) 안과적 문제
근시가 흔하며, 수정체가 제자리를 못 잡고 치우쳐 있는 수정체 탈구가 50% 이상에서 생길 수 있다. 조기에 녹내장이나 백내장이 생길 수 있으며, 망막 박리도 발생할 수 있다.
 
(3) 심장순환기계 이상
심장과 순환기계 이상은 말판증후군 환자의 질병 이환과 사망의 주요 원인이 된다. 좌심방과 좌심실 사이에 있는 판막(승모판)이 지나치게 유연하여 심실이 수축할 때 잘 닫히지 못하고 좌심방 쪽으로 탈출하는 승모판 탈출이 발생하고, 그 결과 혈액이 역류하는 승모판 폐쇄부전증이 나타난다. 좌심실에서 전신으로 혈액을 보내는 대동맥의 기시부가 비정상적으로 확장될 수 있고, 혈관벽이 선천적으로 약해 대동맥이 찢어지는 대동맥 박리 또는 대동맥 파열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대동맥 확장과 대동맥 박리, 파열은 신체적, 감정적 스트레스와 임신 등에 의해 악화될 수 있으며, 대동맥 박리와 파열이 발생할 경우 대량의 혈액이 혈관 벽 틈 혹은 혈관 밖으로 새어 나오기 때문에 긴급한 수술이 필요하다.
 
(4) 신경계
뇌와 척수는 경막이라고 하는 얇은 막에 둘러싸여 있고, 경막 내에는 뇌척수액이 들어 있다. 말판증후군 환자들은 나이가 들면서 경막이 약해지고 늘어나 아랫부분의 척추에 무게 부하가 생기게 되는데 (경막 확장증), 경미한 불편감만 줄 수도 있고 배와 다리의 통증을 일으킬 수도 있다.

(5) 피부
많은 수의 말판증후군 환자들이 체중 변화 없이 피부에 늘어난 자국이 생긴다. 건강에 문제가 되지는 않으나, 배 부분의 조직이 약해질 경우 탈장이 발생할 수도 있다.

2. 진단
말판증후군은 일반적인 혈액검사나 방사선검사로 한 번에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환자와 가족이 동일한 근골격계 이상, 수정체 탈구, 대동맥확장 등을 보이면 의심할 수 있으며, 의심될 경우 안과 정밀 검진과 심장초음파 검사를 실시한다. 특징적인 이상 소견이 동반될 경우 말판증후군을 진단할 수 있으며, 가족력이 있을 경우 진단에 도움이 된다.
염색체 15q21.1에 위치한 fibrillin-1 (FBN1) 유전자의 돌연변이에 의해 말판증후군이 발생한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이 돌연변이 여부를 확인함으로써 말판증후군을 확진 할 수도 있지만, 아직 널리 사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3. 치료
말판증후군의 근본적인 치료방법이 개발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주의 깊게 임상 양상을 관찰하고 약물치료를 받으면 예후를 호전시킬 수 있다. 안구 상태 평가를 위해 주기적인 안과 검진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안과적 문제는 안경으로 교정이 가능하지만, 수술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심장초음파를 통하여 심장과 대동맥의 상태를 주기적으로 검사하고, 혈압과 대동맥에 가해지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심장내과 전문의의 처방으로 약물을 복용할 수 있다. 질병의 중증도에 따라서 판막치환수술이나 대동맥치환수술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근골격계 이상에 대하여 흉부외과와 정형외과의 진찰도 받을 필요가 있는데, 특히 빠른 성장을 보이는 사춘기에 중요하다. 일상생활 중에서는 심한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는 피하는 것이 좋으며, 신체 접촉이 많은 경쟁적인 운동과 관절 손상을 유발할 수 있는 운동 역시 피해야 한다. 심혈관계를 자극할 수 있는 카페인 등의 약물도 주의해야 한다. 말판증후군 환자가 임신하였을 경우 고 위험 산모에 해당하며, 대동맥박리의 위험이 증가하므로 2-3개월마다 심장초음파를 시행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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