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완하교수

우리 집 베란다에는 지금 막 국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그 노오란 빛으로 베란다는 물론 응접실까지 밝아졌다. 아니 어느 집엔들 국화 화분이 하나 없을 곳이 있기에 이리 호들갑을 떠느냐고 누가 나를 질책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거기에는 다 사연이 있는 것이다.
그 화분은 지난해에 우리 집으로 왔다. 그리고 우리 집 베란다에서 겨울을 넘겼고 봄·여름·가을을 지나며 지금 꽃을 피우는 중이다.
우리 조상들은 집에서 기르는 꽃들이 화려하게 꽃잎을 틔우면 친지들을 불러서 함께 감상하며 차나 술 한 잔을 나누었다는 풍류가 알려져 있다.
그 멋을 생각해 보면 실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너무 여유가 없는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는 그럴 겨를이 없기에 우선 이곳에 글을 써서 많은 분들에게 알리고 싶은 것이다. 그 국화는 지난 가을에 화분 가득히 꽃을 피운 채 나의 시집 출판을 기념하려는 어느 선생님의 배려로 나에게 왔다.
먼저 대전 시내 한 복판의 출판기념회장에서 그것은 화려하게 꽃잎을 자랑하면서 손님을 맞이하였다. 그리고 기념회가 끝이 난 뒤에 그것은 우리 집으로 옮겨져 왔고, 베란다 한구석에서 겨울을 난 것이다.
신기한 것은 겨울 동안에도 새로 솟아난 국화 싹이 파랗게 화분 안에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봄부터 그 싹이 웃자라서 여름에는 터무니없이 키가 커졌다. 아내와 나는 들며 나며 그 순을 잘라 더 이상 키가 크지 못하게 하였고 물을 주며 가까스로 살려온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그것이 꽃을 피우리라는 기대는 갖지 않았었고 다만 잘 자라주기를 바랬던 것이다. 그것을 보내주신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만은 오래 간직하며 되새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가을을 맞으면서 기대도 하지 않았던 꽃망울을 피운 것이니 내가 호들갑을 떨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돌아보면 이 국화는 스스로 지혜를 발휘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아마 겨울동안 싹을 내보이지 않았다면 국화 화분은 다음 봄 이전에 버려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미 선생님이 보내온 다음에 나는 꽃을 다 보았고, 이 화분의 임무는 끝이 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겨울에도 파란 싹을 내보이면서 국화는 자기 존재를 알려왔다.
그리고 봄부터 싹이 웃자란 상태로 나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기에 상대적으로 국화는 나와 아내의 정을 더 많이 받았던 것이다. 나와 아내가 국화에게 쏟은 정으로 그것은 이미 충분한 의미를 우리에게 다시 주었다. 꽃까지 피워주니 우리에게 덤에 덤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면서 나는 몇 가지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꽃이 이미 지난 해 가을에 준비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지난해 어느 선생님이 보내온 국화는 화려한 꽃무더기로 다가와 이미 올 가을에 필 꽃의 형태를 알려준 것뿐이고, 올 가을에 핀 꽃이 진정한 의미에서 그 선생님이 나에게 보내주시고자 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오늘 우리 집 베란다에 핀 국화는 그동안 아내와 나의 손이 가고 정이 갔던 꽃이기에 그것이 비록 성글게 피운 꽃잎일지라도 더없이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지난해의 것은 인공의 화실에서 자란 것이라면 오늘의 것은 추운 베란다의 겨울을 딛고 피어난 것이기에 더없이 소중한 것이다.
올 가을에 핀 국화꽃을 보면서 나는 우리가 너무 쉽게 선물을 보내온 사람과 그 성의를 잊어버린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난 해 선생님이 사랑으로 보내주신 국화를 올해서야 비로소 감사하게 받아보게 되었던 것이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