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한옥자

[수필가 한옥자] 잠시 전, 거실 창 가득 검은 구름이 몰려오는가 싶더니 한바탕 비가 쏟아졌다. 비바람이 불어오니 아주 시원했다. 그래서 비 오는 모습도 볼 겸 베란다로 나가니 빗물이 안으로 들이쳤다.

바닥이 타일이라 빗물이 들어와도 괜찮으나 젖으면 안 되는 물건들이 몇 개 있어 우산을 펼쳐놓고 가렸다. 문을 닫으면 되겠지만 바람에도 소통의 문을 열어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 태풍이 오는 시기는 7월부터 9월까지다. 그중 8월이 태풍 내습에 최다 월이고 한 해에 평균 3개 정도가 영향을 준단다. 그러나 올해는 여름도 되기 전에 예년의 3배인 7개가 발생했다고 한다. 태풍은 바닷물이 증발해 생긴 수증기가 대기 중으로 올라가 커다란 구름 덩어리로 만들어지면서 발달하는데 지구의 열적 불균형을 없애주기 위해 생기는 좋은 현상이다. 하지만 남기는 피해는 대단해서 모두 두려워한다.

만약 태풍이 없다면 지구는 열의 평형을 잃게 된다. 적도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열을 차가운 극지방으로 옮겨주고 또한, 바닷속까지 청소하는 청소부로서 어족을 풍부하게 하는 이로운 점도 있다. 이렇게 좋은 점이 있지만 막강한 바람과 폭우가 남기는 위력으로 두려운 존재로 대부분 알고 있다.

올해는 경로를 예측하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한다. 이례적으로 10호를 비롯하여 12호까지 한꺼번에 3개의 태풍이 발달하는 기현상이 생겨서다.

폭염, 폭우, 강풍은 모두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자연의 위력이다. 미리 대비하고 극복하는 방법 밖에는 달리 피해 갈 방법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비가 오면 창문을 닫고 바람이 불어도 문을 닫아건다. 어느 해인가, 몹시 심하게 바람이 불었다. 밤새 집이 날아갈 것 같았고 무서운 바람 소리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필자의 집은 앞뒤로 살짝 열어둔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에 집 안의 물건이 날아다니고 덜컹거리는 소리마저 심해 소란스럽기 그지없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사는 아파트의 여러 집이 베란다 창이 창틀째 빠지고 창문의 유리가 깨져 아수라장이었다. 아침 뉴스를 보니 우리 단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인근의 아파트는 피해가 더 심하다고 했다.

사람들은 뒤늦게 부실공사를 논했으나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창 파손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바람의 문을 막아서라고 했다. 내 집을 보호하겠다고 바람의 출입구를 막으니 성난 바람이 노기를 멈추지 못한 것이다.

화가 난 사람을 만났을 때 왜 저럴까 원인을 파악하면 그 사람과 맞서지 않고 화를 가라앉혀 줄 수가 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은 그 사람의 화내는 '행위를 잘했네, 못했네' 하면서 탓을 한다. 그러다 보니 싸움이 일어나고 종국에는 극을 치달아 서로가 피해자가 되어 버린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렇다. 자연스럽게 불어와 곧 떠날 바람 같은 사안조차 무리하게 막으니 눈만 뜨면 살기 어려운 세상이라고 푸념이다.

태풍의 최다 월을 맞은 8월에 살기 위해 맞이하여야 할 바람은 또 얼마일까. 피하지 못할 바람이라면 소통을 위해 마음을 잠근 빗장부터 열어야 하는 데 지친 마음의 문도 쉬이 열리지 않도록 녹이 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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