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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喪輿)소리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 충북도회 사무처장 양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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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8.05  20: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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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 충북도회 사무처장 양충석]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요령(搖鈴)잡이의 선창에 '어허~, 어허 아~' 상여꾼들이 후렴을 하며 힘을 낸다. 네 명씩 좌우로 여덟 명이 키가 작은 사람은 앞에 큰 사람은 뒤에 자리 잡고 발맞추어 예행연습을 한 후, 마을 어귀를 출발한 꽃상여는 고샅을 지나고 도랑을 건너 들길을 따라 산을 오른다.

비온 뒤라 땅에서 뜨거운 열기가 치솟고 삼복더위에 그냥 오르기도 힘든 가파른 산을 상여를 메고 오르려니 숨이 턱에 와 닿지만, 두어 번 쉬고 상여꾼을 교체해 가며 한 시간여 만에 정상 산소(山所)에 도착하니,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내리쬐는 불볕 태양아래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하관(下官)시간에 맞춰 안전하게 모셨다는 생각에 모두들 안도를 한다.

백모(伯母)님께서 별세하셨다. 올해로 95세이시니 장수를 하신 것이고 요사이 말로 9988234(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2~3일 앓고 4(死) 죽자는 뜻)까지는 못 미치지만, 몸이 편찮으셔서 백형(伯兄)이 병원으로 모셨고 입원한지 3일 만에 돌아가셨으니 모두들 호상(好喪)이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영원히 다시는 볼 수 없다는 현실이 먹먹하고, 방학만 하면 시골 큰댁으로 몰려갔으니 모두가 어렵고 힘들던 지난시절, 먹을 것도 변변치 않고 얼마나 속이 타고 몸이 닳으셨을까. 그래도 따뜻하게 조카들을 보살펴주신 큰 어머님이셨기에 그 서운함이 더 각별하다.

필자의 고향은 충북 보은군 회남면 금곡리(쇠실)이다. 20여 년 전, 어느 시골이나 그러하듯 젊은 사람들이 모두 도회지로 떠나다보니, 마을에 큰일(喪事)이 닥쳐도 상여를 멜 사람조차 없다는 말에 친구들과 의논하여 열한명이 향우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큰일이 생기면 전국에 흩어져 있는 친구들이 모두 참석하여 조문(弔問)을 하고, 꽃상여를 메고, 산소에 잔디도 심고 일이 끝날 때까지 도와드린다.

돌아가신 분에 대한 존중과 배려, 애도는 우리사회의 오랜 미덕이었다. 의식구조와 삶의 방식이 바뀌고 가정의례준칙 등 여러 예절과 절차가 간소화되면서 장례문화도 많이 변화되었다지만, 그래도 세상을 떠난 사람에 대한 간절한 추모의 마음은 여전하고, 망자(亡者)에 대한 예의는 시대변화의 도도한 물결 속에서도 그 정신은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소중한 일은 고향이 있기에 더 가능하지 않을까.

옛날을 추억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일이 부질없고 시간낭비가 아니라, 개인의 심리적 건강상태에 도움이 되고 사회생활에도 큰 보탬이 된다는 연구결과를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고향을 꿈꾸는 사람에겐 늘 행운이 함께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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