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마당] 도한호ㆍ침례신학대학교 총장

▲도한호ㆍ침례신학대학교 총장

직업상 여행할 일이 많아서 철따라 강산을 둘러볼 기회가 많다. 지난해에는 아카시아 나무가 지리멸렬해서 꽃이 피기도 전에 이지러지거나 아예 나무가 말라버리더니 올 해는 이산 저산에 꽃이 많이 피었다.

그러나 도로나 기찻길 옆 산을 보면 경탄은 금방 탄식으로 변한다. 도로 양편에 눈에 띄는 것이 크고 작은 무덤이다.

인도의 한 여행자가 한국을 방문하고는 죽은 자를 정성껏 모시는 한국의 전통과 문화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한 일이 있었다.

나는 그 때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으나 지금에야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은 칭찬이 아니라 의문이요 우려였던 것 같다.

대전에서 상행선 고속도로를 타면 얼마 가지 않아 산자락 여기저기를 파헤치고 자리 잡고 있는 무덤군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차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기만 하면 보이는 것이 무덤이다.

근래에는 무덤에 돌로 축대까지 쌓아놓는 새로운 풍조가 생겨서 산을 더욱 볼썽 사납게 만들고 있다. 이러다가는 아름다운 우리 강산이 모두 무덤으로 덮혀버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국민이 제 마음대로 무덤을 세울 수 있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 또 있을 것인가.

무덤 하나를 만들려면 산에 길을 내어 작은 불도저가 올라가서 땅을 파야하고, 봉분에 잔디를 입힌 후에는 시야를 트이게 하려고 무덤 앞의 나무들을 다 잘라버린다.

이렇게 무덤 하나를 만들려면 수십 수백 그루의 나무와 숲이 희생되며 경관 또한 손상된다. 이 작은 국토가 해마다 수천수만 개의 무덤에 잠식 당하다보면 한 세기쯤 지난 후에는 산이 얼마나 남을지 걱정이다.

국토가 넓은 중국도 이미 삼십 여 년 전 문화혁명 당시에 진통 끝에 화장을 입법화하고 산과들에는 무덤을 만들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필자의 학창시절에는 국가의 법을 통틀어 육법(六法)이라 했으나 오늘날은 일반 학생들은 물론 법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육법이란 말을 잘 모른다고 한다.

그것은 그만큼 법이 많아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작은 영토를 장기적으로 또한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시대에 따라 재빨리 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국토관리와 관련된 것이 장묘문화의 개선인 것 같다.

죽은 이를 산에 묻고 봉분을 하는 문화가 개선되지 않는 한 국토보존은 요원한 이야기일 것이다. 성경의 창세기에는 사람은 흙에서 나와서 흙으로 돌아간다고 기록되었고 다른 종교의 가르침도 대부분 생명이 떠난 육체를 그다지 존중하지 않는다.

이런면에서 볼 때 우리 국민을 계몽해서 장묘에 대한 법을 만들거나 개정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명이 떠난 육체는 흙과 먼지에 불과한 것이거늘 사자(死者)를 추모하는 우리 국민의 정서는 과학적 지식을 넘어 거의 종교의 수준에 이르러 있는 것 같다.

국가적으로 장례문화를 계몽하고 관련시설을 확충하는 한편 단계적으로 산에 묘를 쓰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를 방치하면 얼마 가지 않아서 우리 국토는 묘지로 덮이고 말 것이다. 산을 바라볼 때마다 묘지라는 상처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와 안타깝기 짝이 없다. 오늘 이 순간에도 죽은 이들을 모시려는 자녀들의 효심이 얼마나 많은 산과 수풀을 베어내고 갈아엎을 것인가.

국가는 죽은 자를 존중하는 산 자들의 추모의 정을 더욱 선하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표시할 수 있는 방법을 시급히 제시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더 이상 "죽은 자들이 명당(明堂)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 "죽은 자들의 나라"가 아니라 "산 자의 나라"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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