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희판사

올해 2월21일 청주에서 나의 좌충우돌 판사생활이 시작됐다. 청주로 발령받았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처음 드는 생각은 다소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청주라는 곳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고, 아무런 연고도 없을 뿐 아니라 별다른 특징이나 느낌도 떠오르지 않는 그야말로 "웬 청주?"였다. 청주에서 시보(試補)를 해보았다는 사법연수원 동기로부터 들은 '대도시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골도 아닌 어중간한 곳인데, 아침에 닭 우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는 말이 청주에 대한 유일한 정보였다. 하지만 아직 청주에서 닭이 우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어쨌든 그렇게 무색무취한 느낌의 청주는 나의 판적(판사의 본적)이 되어 나와 인연을 맺게 됐다. 처음엔 친한 사람도 없고 혼자 타지에 와 있다 보니 무척이나 외롭고 심심했다.
지금이야 동료판사들과도 친해지고 업무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 틈나는 대로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때는 이곳에서의 생활이 그저 낯설기만 할 뿐이었다. 그 와중에 청주에서의 처음 느낀 행복은 삼겹살 때문이었다.
옛 청사 인근에 있는 삼겹살집에서 김치와 함께 뒹굴어져 나오는 삼겹살을 맛보았을 때 나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삼겹살이다"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청주에는 내가 좋아하는 커피전문점은 없어도(옛 청사 근처에는 없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삼겹살이 있었던 것이다. 삼겹살이 이토록 큰 즐거움을 가져다 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사람들은 종종 형사합의부 배석판사인 나에게 "시집도 안간 처녀가 매일 흉악범들을 보면 무섭고 힘들지 않느냐"며 안쓰럽게 보거나 혹은 신기하다는 듯이 말한다. 하지만 실제 기록과 재판에서 만난 피고인들 중에는 극악무도한 흉악범은 드물다. 대부분의 피고인은 불행과 고통으로 얼룩진 모습이었다. 범죄피해자 역시 마찬가지다. 형사사건 자체가 사람들 사이의 분쟁과 고통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기록과 법정에는 사람들의 복잡다난한 개인사와 분노와 고통의 소리로 가득 차 있다. 그 속에서 걸러지지도 포장되지도 않은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보곤 하는데, 그럴 때는 힘들다기보다는 마치 인간의 본성을 사정없이 파헤쳐서 보여주는 영화를 보았을 때처럼 마음이 불편하다. 반면, 재판 자체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이다 보니 재미있을 때도 많다.
특히 내가 느끼기에 충청도 사람들은 은근한 유머감각이 있어서, 그들은 결코 웃으라고 한 이야기가 아닌데도 어찌나 재미있는지 법대 위에서 갑자기 웃음을 터뜨려 직장 상사에게 혼난 적도 있다. 배석판사의 생활은 대개 일주일 단위로 쉼없이 급박하게 돌아간다. 다음 주에 선고할 사건의 기록을 검토하고 상관과 합의를 하며, 합의된 결론에 따라 판결문을 작성하고 상관에게 드린다.
상관이 판결문을 쌔까맣게 고쳐서 돌려주시면 판결문을 수정하고, 재판날에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또는 졸지 않기 위하여 두 눈을 부릅뜬다.
그렇게 숨막히게 바쁜 날들을 지나 재판이 끝나면 일주일 중에 가장 여유로운 시간이 찾아온다. 그 날은 동기와 한가롭게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수다도 떨고 집까지 걸어서 가곤 하는데, 마치 떨어지는 낙엽만 보아도 까르르 웃음이 터지는 여고생들처럼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서울보다는 훨씬 한적한 청주의 거리를 걷는 것도 큰 즐거움 중 하나다. 아직 업무적인 면에서나 생활적인 면에서 경험과 능력이 부족해 매일 좌충우돌하지만, 청주에서의 생활은 늘 즐겁고 만족스럽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