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선(善)을 구하고 세우는 것은 벼루에다가 먹을 갈아서 먹물을 만드는 것과도 같고 화선지에다가 글로서 필력을 세우는 것과도 같으며 책꽂이에다가 책을 정리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선(善)한 마음과 선(善)한 말씨를 만들고 선(善)한 행실을 배우는 것은 자신에게 어떠한 이유가 있기에 내가 선을 추구하고 내가 어떻게 선을 추구할 것인가를 명백히 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善)하게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행복한 삶을 이끄는 것이 그 명분이 된다.

여기에서 행복을 충족시킬 수 있는 요인들을 살펴보면 첫째, 신체의 생리적 욕망과 사회적 안정성이다.

사람의 기본 욕구이며 사회적, 경제적으로 불안 요인이 해소될 때에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둘째, 자아인식과 자아실현의 욕망이다.

사회 속에서 '나'라는 존재의 인식을 확인하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때에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셋째, 미래의 실현에 대한 욕망이다.

사람은 다음 세계에 대한 욕망을 설정하고 이 욕망을 위해 많은 것들을 투자하며 행복을 느낀다.

셋째 요인에서 나타나는 특성을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가 있다.

먼저, 전 단계에서 발생하는 불안정적 요인에 대해 대리 만족을 얻는 것이고 다음은 미래의 불확실성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정신적, 심리적 안정을 도모하는 방편으로 종교에 의지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미래에 대한 욕망은 사람의 욕망 가운데에서도 심리적 상태를 극명하게 반영을 하는 현상이다.

자신의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에 안식처를 필요로 하고 이러한 안식처가 마련이 될 때에 오는 안도감이 곧 행복이 된다.

사람은 현실 생활에서 자신의 행복을 찾기에는 너무나도 현실 자체가 위태하다.

그래서 지금의 좋은 현실을 먼 미래까지로 끌고 가려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이 욕망으로 인해 선(善)과 악(惡)의 구분을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즉, 지금의 현실이 비록 부족했더라도 선(善)을 가질 때에 미래에서 좀 더 나은 결과가 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안한 요인들을 심리적으로 안정시키는 것이며 이런 확실성이 크면 클수록 만족도가 올라가는 것이다.

한편, 미래 실현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표를 실현할 수가 있는 힘의 원천이 필요하다.

즉, 이러한 힘의 원천이 되는 것은 운성(運性)이 그 역할을 하는 것이고 이때에 운성은 선(善)과 함께 작용을 하고 교류를 하며 그 가치가 빛을 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행복이 안과 밖으로 작용을 원활하게 하고 교류가 활발할 때에는 그 사회 속에서 삶을 추구하는 모두가 좀 더 나은 미래 실현을 위한 공동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선(善)하다고 하는 것과 행복하다는 것은 수레의 양쪽 바퀴처럼 함께 굴러가는 축을 만들어 미래 실현에 대한 공동의 토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한 개인의 운명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지만 사회 전체의 운명과도 관련을 맺기 때문에 운명(運命)을 논(論)하기에 앞서서 운성(運性)을 논(論)하는 것이고 운성(運性)을 논할 때에는 선(善)을 함께 논하는 것이며 선(善)을 논(論)할 때에도 정법(正法)을 함께 논하여 그 기초를 세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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