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정란건양대교수

지난 13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후에도 우리나라의 고질병인 사교육이 또다시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수시 2-2학기 입시를 위해 호텔에서 숙식을 하며 하루 종일 논술지도를 받는 이른바 ‘귀족형 논술’에 대한 논란이다.
호텔 숙식비에 시간당 비싼 과외비를 내고 높은 가격의 강의교재까지 구입하면 불과 며칠 사이에 수백만 원의 비용이 든다고 하니 중산층 가정에서도 선뜻 내놓기 어려운 금액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경제 불황의 위기 앞에서도 이름 있는 학원이나 강사가 가르치는 곳은 이미 정원이 다 찬 상태이고 서울에 있는 일부 레지던스 호텔들은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정작 문제는 논술과외가 아직 전초전이며 정시 입시 때가 되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점이다.
논술은 어떤 주제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서술하여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글이다. 인간사회의 특정 현상에 대해 논리적으로 피력하는 것으로 종합적인 사고력과 표현력을 필요로 한다.
즉 특정 주제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경험을 동원하여 주장하는 바를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논술은 하루아침에 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방면의 독서가 축적되어야 하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력과 글쓰기 능력이 요구된다. 해마다 입시에서 판에 박힌 논술 답안이 지적되고 있는 것도 단기간에 문제은행식 풀이로 배운 내용을 암기하여 답을 작성하기 때문이다. 바로 논술과외의 폐단으로 인한 것이다.
바칼로레아는 논술시험의 이러한 폐단을 지적할 때마다 들먹여지는 프랑스 대입 자격시험이다. 우리나라 수학능력시험에 해당하는 바칼로레아는 고등학생이 풀기에 난해할 정도로 깊이 있는 철학적 문제가 출제되어 수험생들이 많은 부담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유명인사와 시민들이 그 주제로 모의고사를 치르고 방송을 통해 답안을 공개하는 등 온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는 시험이기도 하다. 이러한 바칼로레아 방식의 논술은 학생들의 지성과 이성을 판단하는 훌륭한 시험일 수 있지만 우리나라 입시에서는 오히려 사교육을 자극하는 역효과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프랑스는 유치원부터 고교까지의 모든 공교육이 바칼로레아를 준비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할 만큼 어릴 때부터 토론과 논쟁, 독서와 글쓰기 등이 교육과정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는 논술이 정규 교과내용에 포함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입시에서 논술시험을 치러야 하며 당락을 좌·우하는 주요 변수로 작용하기도 한다.
수험생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값비싼 논술과외에 매달리는 것도 이러한 사정 때문이다. 대학입시에서 논술시험이 지속되는 한, 논술은 공교육 안으로 흡수되어야 한다. 초등학교부터 정규 교과과정에 논술과 관련된 과목을 개설하여 체계적인 사고와 쓰기 훈련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국가 정책만을 기대하지 말고 학부모 스스로도 자구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토론과 쓰기는 가정에서 하기 어렵지만 독서는 생활 속에서 쉽게 실행할 수 있는 부분이다. 논술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단기간에 습득할 수 없는 것이 독서량이다.
독서는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하므로 그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정신적 자산이 될 수 있다. 독서 방법론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어떤 책을 읽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 아이가 좋아하는 책이면 만화책이든 그림책이든 무조건 읽게 하는 것이 좋다. 책에 흥미가 붙으면 주변에 있는 책들을 섭렵하게 되고 자연히 독서의 폭이 넓어지게 마련이다.
논술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력과 통찰력으로 논리적 글쓰기를 한다는 점에서 단순히 지식만을 평가하는 시험보다 매우 인간적이며 학구적이다.
이러한 점에서 논술을 위한 학습은 단지 입시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성과 감성 그리고 지성까지 함양시킬 수 있는 전천후 교육이라 할 수 있다.
부모가 아이와 함께 책을 읽는 순간부터 논술교육은 시작되며, 가정경제뿐 아니라 국가경제까지 잠식하고 있는 막대한 사교육비를 절감할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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