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인순

“내가 죽은 엄마의 젖꼭지를 입에 물고 있었다네.” 벌써 그의 눈에는 눈물이 흥건하다. 환갑이 지난 나이, 어지간한 일에는 감정에 휘둘릴 것 같지 않은 그의 모습에서 눈물을 보니 장난인가 싶어 웃음이 나왔다.
자신도 쑥스러운지 피식 웃는다. 어린 시절만 생각하면 늘 눈물이 나고 명치가 뻐근하다는 사람. 젖먹이 때 돌아가신 어머니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고 동네사람들의 얘기만으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더듬어볼 수 있었던 사람.
계모의 학대 때문에 방에서 잠을 자본기억도 별로 없었다고 한다. 그나마 아버지도 소년시절에 돌아가셔서 갈라터진 손에 기름때가 새까맣게 일만 했다고 한다. 아직도 꿈을 꾸면 내복도 없이 넝마 같은 허름한 옷을 입은 아이가 떨고 있는 모습이 보여 따뜻한 방에서도 한기에 내몰린다고 한다.
첫눈이 제법 푸짐하게 왔다. 나뭇가지에 소복이 쌓인 눈을 보니 그저 예쁘다. 사진처럼 눈 쌓인 풍경들이 머릿속에 스친다. 나 역시 눈이 오는 날에는 낭만이 발동한다.
내가 시집오는 날 첫눈이 왔었다. 눈 오는 날 시집가면 잘 산다는 말을 굳이 잊지 않고 기억해 내며 살았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말처럼 가난하고 무력했던 과거의 풍경에 점점 새로운 희망을 오버랩 시킨다.
과거도 변하는 것 같다. 눈물 없이는 말할 수 없었던 어두운 과거가 농담처럼 가볍게 변하기도 한다. 슬픈 과거는 더욱 슬퍼지기도 하고 자랑스러운 과거에는 조금씩 자랑이 더 보태지기도 한다. 그렇게 믿어가는 과정이 과거인지도 모르겠다. 방금 전에 한 일도 기억 못하고 허둥대며 물건 찾기를 반복하는 내가 사십년 전 오십년 전 얘기를 어찌 그리 상세히 알 수 있겠는가.
혼자 힘으로 살아남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일념으로 살았지만 가난하고 배우지 못하고 가족도 없는 그가 살기에는 이 세상이 너무도 불공평했었노라고 말한다. 자신의 아이가 자신처럼 되는 것만은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신념이 죽는 것보다 어려운 삶을 선택하게 해 주었다고 한다.
그의 말을 들으며 불과 오십여 년 전 한국의 실상을 보는 듯하다. 전쟁의 폐허에서 필리핀의 3분의 1밖에 안 되는 76불의 국민소득으로 시작한 대한민국 기적의 역사에 흑백사진으로 끼어있을 그의 어린 모습을 상상해 본다. 인터넷을 통해 그 시절의 영상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렇게 견디어 내고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악착같이 가난을 극복했던 그들 덕분에 나는 지금 겨울 눈꽃의 낭만을 노래할 수 있지 않은지.
말은 생각의 표상이다. 그렇다고 믿고 있는 얘기가 나의 과거라면 육십년이 지나도 눈물 없이는 말할 수 없는 그의 과거도 이제는 변했으면 좋겠다.
죽은 어미의 젖꼭지를 물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서 자유롭기를 희망한다. 이제는 살만하다고 말하는 그가 진정으로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기를 바란다. 미국사회에서 당당하게 자립해서 살고 있는 자녀를 생각하면서 어린 시절을 위로 받았으면 좋겠다.
말대로 미래가 만들어진다면 말대로 과거도 바뀌어 지지 않을까. 늘 힘 있게만 보였던 겉모습처럼 그의 속울음도 이제는 ‘뚝’ 멈출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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