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인간에게는 말을 하고 도구를 사용하는 신체적인 능력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운명을 감지하고 개척할 수 있는 영(靈)적인 능력도 주어져 있다.

다만 자신의 고요함을 보지 못하고 스스로가 혼란함을 추구하면서 외물(外物)에다가 마음과 생각을 빼앗기기 때문에 주어졌던 능력이 상실됐거나 퇴화가 돼버린 것이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의 인생을 자신만큼 크게 고뇌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고달프고 힘이 들며 두려운 마음이 생겨 날 때에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앞날을 매달려 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어렵고 힘이 들며 두려운 마음에서는 생각 속에 생각만이 번져 갈지라도 어렵거든 나아가지 말아야 할 것이고 힘겹거든 서두르지 말아야 할 것이며 두렵거든 움직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설혹 누군가가 자신의 육신과 마음과 생각을 보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얇고 짧으며 책임감이 없는 보았음이니 자신의 육신과 마음과 생각에서 자신보다도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보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자신의 운명이나 운성의 맑음도 스스로의 책임이며 지혜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훌륭한 학식을 지닌 선비일지라도 자신에 관한 문제에서 자신에 대한 문제를 자신만큼은 정확히 판단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보아야 할 것이다. 멀리의 그것을 보기보다도 가까이에 내 마음을 보아야 할 것이다. 고요한 마음을 보아야 할 것이며 하나 없는 마음을 보아야 할 것이며 자유로운 마음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별처럼 영롱한 그 느낌을 느껴야 할 것이며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그 인연을 느껴야 할 것이며 캄캄한 밤길과도 같은 그 운명을 느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누구도 대신 볼 수가 없고 누구도 대신 느낄 수가 없는 자신의 소중한 인연과 운명을 보아야 할 것이다.

아름다운 새소리를 귀로 듣는 것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향기로운 꽃 내음을 코로 맡는 것처럼 맑기가 새벽 종소리와도 같은 내 마음을 보아야 하리다.

또 신비롭고 영롱하기가 그지없는 내 인연과 운명을 느껴야 한다. 이것들은 신비로운 것이다. 그래서 애써 찾으려 하면 멀어질 것이고 느끼려 하면 달아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하려고 하면 오히려 헛된 것들이 장난을 하고 더욱 몽매하여 흐려질 뿐이다.

그러므로 오로지 내 마음속에 마음과 함께 하고 내 영혼 속에 영혼과 함께 하면 좋을 터이니 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가는 것을 기쁨으로 보내야 하리다. 그래서 마음은 내 안에서 노니는 맑은 물고기와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랬던 것처럼 함께 노닐던 외물(外物)을 보내려고 하면 서운하겠지만 그래도 마음에서 보내야 한다. 진실한 그 영혼이 찾아오리니 환하고 영롱하며 신비롭기가 그지없는 하늘의 세계와 내면의 세계와 영혼의 세계를 자신이 찾아야 하리다. 그때에 삶의 고통에서 기쁨이 저절로 피어난다면 그것으로 기쁨이 되는 것이다.

운(運)은 멀리서 조용히 바라보면 느껴질지라도 가까이 시끄러우면 느낄 수가 없고 선(善)하여 진실(眞實)되면 맑아서 보일지라도 악(惡)되고 거짓되면 흐려서 보이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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