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숙 열화당책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이른바 명문대생들이 삶을 포기한다. 연이은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공지향주의가 낳은 결과다. 그런데 미국도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 부모의 지나친 기대와 간섭 그리고 비교문화가 명문대생들을 자살로 내몰고 있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2014년 9월 학기부터 툴레인 대학에서 4명, 애팔래치아 주립대에서 3명이 자살했으며, 2009~2010학년 코넬대학에서는 6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는 미국 내 15~24살의 자살은 2007년 10만 명당 9.6명에서 2011년 11.1명으로 늘었다고 집계했다. 미국 대학 상담 센터들은 센터를 방문한 학생의 절반 이상이 심각한 심리 장애를 겪고 있으며, 그 비율이 2년 만에 13%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13개월 동안 6명이 자살한 동부의 명문 펜실베이니아 대학은 지난해 초 인기 많고 활동적이었던 한 신입생이 투신한 직후 학생들의 정신건강을 점검하기 위한 태스크포스를 꾸렸다. 태스크포스는 올 초 보고서에서 '펜 페이스(Penn Face)'라는 우려스러운 캠퍼스 문화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학생들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사용되어온 이 용어는 슬프거나 스트레스를 받아도 늘 행복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비치도록 쓰는 일종의 가면을 일컫는다.

스탠퍼드 대학에서는 그것을 '오리 신드롬'이라 부른다.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오리가 실은 물속에서는 끊임없이 물질을 하고 있는 모습에 빗댄 말이다.

2003년 듀크대 연구 보고서도 동대학 여학생들이 '눈에 보이는 노력 없이 똑똑하고 성취감도 높으며, 아름답고 인기까지 많은 사람이 돼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린다고 밝혔다. 수재들의 집합소에서 느끼는 심리적 압박감이 학생들에게 거짓으로라도 완벽함을 추구하도록 부추기고 마침내 죽음으로 내몬다.

코넬대학 심리상담소는 잇단 학생들의 죽음에는 소셜미디어의 영향도 크다고 분석했다.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를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 가늠하려 한다는 사회적 비교 이론은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최근 고도로 계산된 외형적 모습만 드러내는 소셜미디어는 이 비교문화의 위험성을 더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모두 지나친 성공 중심주의에 젖은 부모의 지나친 기대와 간섭이 그 원인이다. 부모는 자식이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기 전에 알아서 해 줌으로써 제 발로 일어설 기회를 빼앗는다.

자식의 주변을 맴돌며 감독하는 '헬리콥터 부모'에 이어, 먹이를 낚아채기 위해서 높은 곳에서 눈을 부릅뜨고 지키는 '독수리 부모'도 모자라 이제는 아예 자식 앞에 나타나는 장애물도 미리 제거해주는 '잔디 깎기 부모'까지 등장해 자식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이는 사회의 가치 기준, 부모의 인식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해결되지 않을,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풀어야 할 요원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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