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순 메타바이오메드 상무이사] 이삿짐 꾸리는 게 25년 만이다.

마치 내 몸처럼 익숙했던 집 안 구석구석을 밟아본다. 이곳에서 삼 형제 키우고, 결혼시키고, 필자가 사회적으로 성장한 곳이다. 남향이어서 볕도 잘 들고, 적당한 시야에 푸른 일봉산도 보이고, 걸어서 2분 거리에 전철 역도 있다. 삼 형제가 걸어서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다. 치열하게 일하던 젊은 날, 과로로 쓰러져 옆집처럼 가까운 종합병원 응급실 신세를 진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조금만 걸어나가면 시내 곳곳으로 향하는 버스 정류장이 있고, 로데오거리가 있어서 심심찮게 눈요기도 할 수 있다. 그러그러한 핑계로 25년간 이사를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남편이 오랜 공직에서 퇴직했다. '집사람'이라고 농담을 할 만큼 밖에 나가는 일이 드문 남편이 묵은 살림살이가 널브러진 집에 혼자서 종일 지낼 것이 마음에 걸렸다. 아파트를 어디로 옮겨야 하는지 의사결정 대차대조표를 머릿속에 그리기 시작했다.

이제 빈 둥지가 됐으니 학군은 무시하기로 했다. 그러니 천안 최고 학군으로 값이 비싼 불당동이 제외됐다. 그동안 재테크의 수단이었던 아파트가 생산 가능인구의 감소와 더불어 가격 하락이 시작될 거라고 믿기에 어느 정도 가격이 하락한 아파트를 찾았다. 앞으로 30년 이상을 거주할 계획이기 때문에 지은 지 5년 이하 된 곳이면 좋고, 노인이 될 테니 병원 가깝고, 나들이하기에 좋은 톨게이트나 터미널도 가깝고, 시내버스 노선이 자주 있는 곳, 가벼운 등산이나 산책이 가능한 곳, 하나씩 체크하다 보니 지역이 분명하게 그려졌다.

그 동네 부동산에서 소개해주는 아파트를 보다가 동남향으로 탁 트인 전망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집을 결정했다. 무슨 집을 슈퍼에 가서 쌀 한 포대 사 오듯이 금방 결정하느냐고 했지만 내 머릿속에 완벽하게 그려진 그림이 나타나는 순간 굳이 발품을 더 팔아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사 온 지 두 달째, 눈을 뜰 때마다 순간의 선택이 얼마나 탁월했는지 감탄한다.

방 깊숙이 쏟아지는 햇살, 소파만 하나 달랑 있는 거실의 여유, 열어 놓은 창문 사이로 무수히 들고나는 산들바람, 잡동사니를 모두 감춘 붙박이장, 어느 방에 앉아있든 보이는 숲 풍경, 그 안에서 시간 날 때마다 멈추어 나를 돌본다.

남편은 단연 주변 산책길을 예찬한다. 오 분 거리에 있는 천호지 주변을 돌고, 가까운 산을 오르며 심신단련에 최고 입지라며 만족해한다. 그런저런 감사의 마음으로 며칠 전부터 우리는 쓰레기봉투와 집게를 들고 산책길을 나섰다. 둘이 손발이 맞아 집고, 담고 하니 산책하는 즐거움에 보람도 더한다. 다만 쑥스러움을 어찌 극복할지는 아직 난감하다.

25년을 살다가 집을 옮기고 나서도 자리덧 하지 않으니 참 다행이다. 여기서 우리는 오랫동안 곱게 익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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