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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수걸이
윤현자  |  news@ccdail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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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8.11.27  19:5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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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현자 시인ㆍ충북시조시인협회 사무국장

이른 아침 청주시 육거리시장엘 갔다. 김장철이라 적잖은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지만 아직도 머뭇대고 있는 어둠과 함께 희뿌옇게 내리는 안개가 조금은 을씨년스런 분위기마저 자아낸다.
사는 곳이 시장과 가까워 자주 들르기도 하지만 한 푼의 에누리도 없이 디지털저울로 계산되는 마트의 팍팍한 인심이 내심 마음에 들지 않아 곧잘 시장을 찾는다. 예전과는 달리 재래시장도 많은 변화를 거듭해 이젠 무질서하게 좌판을 벌이며 악다구니를 하던 모습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발 딛기가 어려울 만큼 불결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시장통도 여간 깨끗해진 게 아니다. 더구나 이곳 새벽시장은 청주 근교의 농가에서 직접 지은 곡물·채소·과일들을 주인이 직접 들고 나와 파는 경우가 많아 가격이나 품질 면에서 마트에 비할 바가 아니다.
산더미처럼 물건을 쌓아놓고 연신 “골라골라”를 외치며 오가는 사람들을 불러 세우던 입담 좋은 아지매도, 눈을 허옇게 뜬 채로 죽어 좌판 위에 올라 온 생선을 방금 전까지 펄펄 뛰었다고 익살을 떠는 아저씨의 모습도 이젠 아련한 추억 속의 한 컷으로나 남아있지만 여전히 가슴 따뜻해지는 곳이다.
지난주에 담근 갓김치의 양이 적다 싶어 좀 더 담을까 하고 나온 길이라 눈은 온통 갓 장사만을 좇고 있다.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진 탓인지 배추며 푸성귀들이 살짝 얼어 마음에 꼭 드는 돌갓은 눈에 띄질 않는다. 그냥 돌아설까 망설이다 한 아주머니 앞에 놓인 갓이 그런대로 볼품을 갖췄길래 값을 물었더니 한 단에 이천오백원이란다.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아도 여기저기 벌레 먹은 자국이 오히려 농약을 적게 쓴 것 같아 다섯 단을 달래자 아주머니는 만이천원만 내고 여섯 단 모두 가져가란다. 한 단에 오백원이나 깎아준다는 아주머니의 후한 인심에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고맙습니다”하며 계산을 하자 그 분도 환한 표정으로 “아유, 오늘은 시원하게 마수를 해서 장사 잘 되겠다”고 한다.
주변의 장사꾼들도 “그러게 순이엄만 좋겠다” 하며 짐짓 부러운 눈치다. 돌갓 말고도 몇 가지 다른 푸성귀를 더 끌어안고 있던 아주머니의 경쾌한 목소리가 시장을 돌아나가고 나는 서둘러 집을 향하며 그 분이 오늘 장사를 잘 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했다.
‘마수걸이’는 맨 처음으로 물건을 파는 일, 또는 거기서 얻은 소득을 일컫는 순 우리말이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과 스포츠선수들이 흔히 쓰는데 시작이 좋아야 이후의 장사 또는 경기가 계속 잘된다는 뜻으로 시작을 무척 중요하게 여김을 이르는 말이다.
나는 오늘 그 아주머니의 후덕한 인심에 기분 좋은 하루를 맞을 수 있고, 또 그분은 시원스럽게 마수걸이를 해준 나로 인해 하루 장사가 술술 잘 풀려 만족할만한 성과를 이룬다면 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가끔은 이런 작은 일로도 즐겁고 행복해지고 싶다.
꼭 크고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에 감동을 하며 감사할줄 아는 또한 누군가에게 작게나마 감동과 기쁨을 주는 그런 인연이고 싶다.
뭔가 쉽사리 풀리지 않는 일로 잔뜩 신경을 곤두세울 때면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나 지폐 몇 장 주머니에 찔러 넣고 시장에가 어깨 축 처진 누군가에게 시원시원한 마수걸이 한번 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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