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인간의 탄생은 종교의식처럼 장엄하기가 끝이 없고 신령스럽기가 그지없는 하늘의 명(命)을 거행하는 의미로운 것이다.

만날만한 남녀가 만나서 그저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태어나는 생명체가 아니라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수 겁의 세월과 인연의 고리에서 만나는 한순간이 되는 것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고 아득하기가 그지없는 곳에서 녹색의 숲이 좋고 푸른 바다가 좋은 이 땅에서 남과 여의 만남으로 비롯되었던 것이 탄생이다.

작은 이 땅에서 모여 살기도 어렵고 한 시대를 함께 풍미하는 것도 어렵다.

그리고 인연으로 만나는 것은 두 개의 모래알이 만나는 것처럼 지극히 어려운 가운데서 우리가 됐다.

사람의 생(生)이 일 만년만 된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아쉬울 것도 없고 신비스러울 것도 없으련 만은 다행히도 일백 년을 넘기가 어려우니 두 사람의 인연은 운명의 굴레에서 만나는 값진 것이 아니겠는가?

하물며 태어나는 생명(生命)이야! 다음의 역사를 끌고 나갈 생명이 숨을 쉰다는 것은 아무리 하찮게 생각을 하려고 해도 하찮을 수가 없는 하늘의 준엄한 명령이요, 우주의 간절한 바람이다.

그가 이 땅 위에서 어떻게 살아가든지 그리고 무엇을 하고 어떤 것을 남기고 가든지 그것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미 하늘의 명(命)을 이행하였음이 자랑스러운 것이요, 우주(宇宙)의 바람을 행하였음이 소명이 되는 것이다.

장차 무엇이 될까를 골몰하기 이전에 내가 이 땅 위에서 태어났음이 자랑스러운 일이요, 숙명적인 이 땅과의 인연이요, 이 시대와의 운명이라면 고귀한 이 생명에게 어떻게 헌신을 하느냐가 또 다른 나의 명(命)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육신이 내 것이라고 해도 쓸모가 다하는 그날 반드시 되돌려 줘야 하고 마음과 영혼이 내 것이라고 해도 쓸모가 다하는 그날은 반드시 되돌려 줘야 한다.

하지만 애초에 아무런 가치가 없던 내 존재에서 가치가 생겨나고 고귀함이 생겨났을지라도 남들에게는 천한 사람의 대접을 받고 하늘에게는 불쾌한 여운을 남기고 돌아간다면야! 어찌 하늘이 섭섭하다고 하지 않으리요, 어떻게 우주가 부끄럽다고 하지 않으리까?

자신의 생명(生命)인 양 착각을 했을지라도 아직은 늦지 않았다. 조금의 늦은 감이 있을 뿐이다.

다음의 숙명(宿命)을 깨닫고 자신의 할 일을 다 할 때에는 하늘은 그에게 권리를 부여할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기쁨을 줄 것이며 하늘은 그에게 편안으로 보답을 할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보존만을 생각하지 않고 하늘과 다른 생명체에게도 보답을 생각할 때라야 진정으로 천명(天命)을 행(行)하는 것이리다.

남녀가 만나기 이전을 운성(運性)이라 비유하고 남녀가 만나는 그 때부터를 운(運)이라 비유하노라면 남녀 사이에 태어나는 아이를 얻음은 천명(天命)이라 하느니 결국 누구라서 천명(天命)도 없는 태어남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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