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병진 마음편한 정신과 전문의

우연히 본원의 간판을 보았는데, 문득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진료실을 방문하였다는 분들이 간혹 있다. ‘병원이름을 잘 지었구나!’하는 생각을 하고 만족스러워 하다가 사람들이 ‘마음 편하고 싶은 바람이 크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신과를 방문하는 분들의 반수 정도는 ‘우울하고 무기력하다’,‘예전처럼 활달하고 자신감 있게 생활할 수가 없다’는 호소를 하며 진료를 통해 하루 빨리 마음이 밝아지고 의욕이 있었던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환자분의 그런 욕구를 경청하면서 내 머릿속에는 “과연 이전의 밝았던 상태를 원상회복하는 것이 이 사람의 인생에서 얼마나 이득이 될까?”하는 의구심을 갖는다.
사실 앞에 앉아서 내게 “지금은 마음이 불편하니 빨리 이전의 편했던 상태로 돌려주시오”라고 요청하는 사람이 내 생각을 엿본다면 무척 실망할 무능한 의사의 변명 같은 동상이몽(同牀異夢)을 하게 된다.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밝고 의욕이 있으며 자신감이 많이 있었던 시기의 삶의 내용을 들어보면 고양된 정신적 에너지로 현실의 삶에만 대부분의 관심이 쏠린 불균형 상태, 즉 ‘자신의 과거경험이 현재 삶의 큰 바탕을 이루었고, 그 바탕위에서 현재 우울감과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심리적 현실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마냥 이전의 에너지 수준이 높았던 상태를 그리워하고 낮은 에너지 수준으로 기분이 우울한 것은 강하게 싫어하는 마음, ‘달고 좋은 것이 좋고 씁쓸하거나 기분이 가라앉은 것은 싫다’라는 유아적 취향에 사로잡혀있다는 생각을 한다.
깊이 생각해 보면 정신과 신체의 에너지 수준이 높은 상태가 사람에게 이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런 충만 된 에너지는 현실에서 미뤄둔 일을 하게 만들고 돈을 벌수 있게 해주지만 자칫하면 자신감에 넘쳐 무리한 투자를 하게 되거나 너무 확실한 주관을 가지게 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위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기게 되는 긍정기능에 못지않은 만만치 않은 부정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사실 좋은 것과 나쁜 것,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으로 구분되는 것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은 피상적 사고의 결과이다.
따라서 치료의 첫 단추는 현재 우울한 것이 꼭 나쁜 것이 아니고 필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시키고 이전의 상태로의 회귀에 대한 희구를 낮추는 방향으로 시작된다.
‘이전의 마음 편하게 고민 없이 활달하던 시간이 해롭기도 했구나’ 하는 사실 깨닫도록 돕고, 현재의 우울하고고민이 많은(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이 시간이 찾아오게 되는 흐름에 대해 바라 볼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런 치료자의 의도를 환자가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우울증상의 빠른 완화를 자주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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