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창준교수

고대 원시역사부터 눈부신 과학혁명의 혜택속에 살고 있는 현재까지 잘먹고 잘사는 생을 이어가는 집단이 있는가하면 아직도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고통속에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이다.
사회적 또는 경제적으로 장치된 각종 안전망들이 있다 하지만 노약한 계층을 위한 완벽한 장치란 어렵다는 것도 잘안다. 하지만 사는것에 좀 여유있는 집단이 부족하게 연명하는 집단에게 배려하는 것이야말로 더불어 사는 본보기요 따뜻한 사회적 안전망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요즘 더욱 절실해지는 것이 더불어 사는 것에 대한 생각이다.
만약 부자집단이 빈자집단에 대해 되려 더 가지려고 덤벼드는 패악질을 서슴치 않는다면 그것은 야만이 된다.
야만의 세계에서는 약한 집단에 대한 배려는 없다. 오로지 배부른 자신들만의 욕심만 채우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대단히 원시적인 힘의 원리로 모든 것을 작동시키려 든다.
수도권규제 완화방침은 그래서 야만이다. 서울과 경기도를 중심으로 하는 수도권은 살찐 돼지처럼 비대하면서도 끝모를 욕심으로만 치달아 그나마 숨 좀 쉬게 붙들어 둔 수도권 규제를 일시에 무력화시키려는 완화방침으로서 지나친 욕심 아니 야만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첨단시대를 살고 있는 작금의 시대에도 이러한 야만적인 힘의 우위로 모든 것을 결정하려는 행위에 대해 개탄한다.또한 이러한 때일수록 집권자의 약자집단에 대한 통 큰 배려가 아쉬운 순간이다.
단편적인 정치지향적 정책 보다는 수십년, 수백년의 초석을 다지는 것으로써 노약집단을 설득하거나 무시하려들지 말고 여유있는 집단 등을 향하여 그야말로 고통분담 차원에서 대승적인 자세를 이끌어 내도록 노력하는 모습이 아쉽다.
한국의 성군은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을 서슴없이 꼽으며 중국의 성군은 중국역사상 유래없는 61년이라는 긴 기간을 재위한 강희제를 꼽는다.
강희제는 소수민족이 세운 청나라를 대제국으로 발전시키고 중국을 최후로 통일시킨 제왕이며 우리나라의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4군 6진을 설치하며 국방을 정비하고 측우기ㆍ해시계 등 과학기구를 발명하여 과학문명의 부흥을 꽤하고 방대한 역사편찬을 한 것으로 치적을 꼽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공통적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치적이라면 어진백성ㆍ어려운 백성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것인데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의 창제로써 드러나며 강희제는 근정애민의 유지를 끝까지 받들어 실천하였다고 사가들은 전한다.
어진 백성을 향한 섬김을 진심어린 행동으로 베푸는 성군을 기다리는 것이 헛된꿈이 아니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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