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웅 수필가] 금년 여름은 여느 해보다 무더웠고, 심한 가뭄까지 이어져 여러 가지로 어려운 점이 많다.

이제 추분이 지나고 추석을 맞이하다 보니 완연한 가을이고 중추가절이 됐다. 아직 맑은 하늘에서 내리쬐는 볕이 한낮에는 뜨겁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해 긴소매 옷을 찾아야 할 정도다.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을 바라보면 더없이 쾌적하고 행복하지만 오랜 가뭄에 대자연이 메마르고 사람도 지치고 있다. 며칠 전 중국 장가계 일원 관광을 할 때 비를 맞으며 다녀서 아쉬웠다. 연중 200일 이상 비가 온다는데 4일 중 2일은 비가 오지 않았으니 그래도 다행이었다. 우리 지방에도 흡족한 비가 내리면 좋으련만…

( 가을 전령사 )

등산로를 오르니 먼지가 나고 길가의 풀도 시들어 안쓰럽다. 백로가 집단 서식하고 있던 청주 남중학교 뒷산에 오르니 백로는 보이지 않고 여기저기 소나무를 베어낸 흔적이 보였다. 철새인 백로가 떠난 지난 9월 초, 학생들의 학습권과 위생을 위해 간벌을 한 것이라 한다. 길조로 여겼던 백로도 천덕꾸러기가 되다니…

이곳에 백로가 서식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3년 전인 지난 2012년부터였다. 몇 마리로 시작한 잠두봉 서식지는 환영받았고 명물이 됐다.

무심천이 가까운 천혜의 환경 덕분에 1000여 마리로 늘다 보니 문제가 많아 퇴출 대상이 됐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더니, 백로도 정도가 지나치면 부족한 것보다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일러준다.

급격히 늘어난 백로 떼로 인해 소음, 먹다 떨어뜨린 찌꺼기, 백로 새끼 사체가 썩으면서 풍기는 악취 등 심각한 공해가 됐다. 이미 불청객이 된 백로가 안타깝다. 인간과 상생하고 소중한 자원이 되는 묘안은 정녕 없을까?

길가의 억새와 들국화 그리고 여러 열매들이 보인다. 머지않아 곱게 수놓을 단풍도 좋지만 이러한 가을 산 모습도 아름답다.

등산로를 걷다 보니 '툭'하는 나지막한 소리가 들렸다. 밤나무에서 자그마한 아람이 떨어진 것이다. 함께 간 친구가 두 개를 주워 옆 사람에게 하나씩 건네줬다. 옷에 쓱쓱 문질러 겉껍질만 벗기고 속껍질째 먹어보았다. 좀 떫고 씁쓰레했지만 씹을수록 밤 맛이 나는 걸 보니 잘 여물은 것 같다.

친구 덕분에 올해 햇밤을 처음 맛본 것이다. 앙증맞은 밤 한 톨! 등산로에서 가을 전령사를 반갑게 만났다.

( 한가위만 같아라 )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결실의 계절답게 오곡백과가 익어가고, 산들바람에 황금물결로 출렁이고 있다. 바라만 봐도 배불러지고 생각만 해도 풍요롭고 행복하다.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도 성큼 다가왔다.

이 아름다운 가을, 풍요로운 가을! 중추가절(仲秋佳節)에 우리의 마음도 더욱 곱고 아름답고 넉넉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최근 제주 어린이집 일가족 사망 사건 등 각종 불미스럽고 불행한 사건·사고가 잇달고 있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생명 존중은 물론이고 '욱하는 성격'을 잘 다스려야 한다.

화가 날 때는 마치 남의 일을 보듯 태연하게 대응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가을 햇살처럼 풍요롭고 자비롭게, 가을 하늘처럼 투명하고 깨끗하게, 휘영청 밝은 보름달처럼 환하고 넓은 마음으로 웃으며 살아갈 수는 없을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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