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주 선문대 교수] 여름의 자리를 꿰찬 가을은 개선장군인 양 형형색색으로 치장을 하고 기상나팔을 불어제치며 승리의 행진곡을 연주한다. 개선문을 통과했던 영웅의 자리는 누군가의 목숨을 담보한 것이고 누군가의 삶의 터전을 유린하고 꿰찬 자리며 여의도를 가득 메운 마천루는 누군가의 형제, 자매, 가족의 눈물을 터전으로 쌓아 올린 바벨탑일 것이다. 한 영웅을 위해 누군가는 고아가 되고, 누군가는 남편과 아내를 잃고, 삶의 터전을 잃고 노예가 된다. 누군가의 목숨과 바꾼 영웅의 자리는 과연 행복할까?

교육은 왜 필요한가? 유엔미래보고서 2040에서 장차 사라질 운명에 있는 직업으로 공교육과 교실, 교사를 지적했다. 일정 부분 일리 있는 지적이다. 일정 부분이라 함은, 교육의 근간인 '공유의 가치', '공동체의 시각' 등의 가치를 빼버리고, 지금과 같은 적자생존이라는 우생학적 논리만을 강조하는 교육이 지속됐을 경우를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말을 꽤나 설득력 있게 믿는다. 해서 많은 사교육 기관에서는 우수 집단을 영입하기 위해 혈안이 되고, 국가가 방송국을 만들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과외를 하는 비정상적이 모습이 연출된다. 그러나 이것은 교육의 참모습이 아니다. 교육은 Educationa과 Instruction이라는 두 가지로 번역되는데, Education은 라틴어 educo를 어원으로 한다. 이는 교육, 양육, 길들임의 뜻으로 duco는 '끌어당기다', '안내하다', '나오게 하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Instruction은 라틴어 instruo에서 온 말로 struo는 '배열하다', '배치하다', '정돈하다'라는 뜻이다.

철학자 칸트가 '한 세대가 그 경험과 지식을 후대에 전하고, 이 세대가 또 그다음 세대로 전함으로써 사회는 진일보한다'고 한 것처럼, 교육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잠재 능력, 가능성 등을 밖으로 끄집어 내는 역할과, 태고로부터의 지식을 내재화(內在化, internalizing)하는 동시 작업인 것이다. 그 시작이 인간성 회복인 것이다. 인간성은 '인간다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본질'을 말한다. 모든 선과 악에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자유를 '공동체의 선'이라는 시각으로 판단할 수 있게 해주는 작업이 '교육의 존재가치'인 것이다.

한가위가 되면 10여 시간의 정체를 무릅쓰고 고향으로, 가족의 품으로 발길을 옮기는 것은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선을 실천하는 인간성의 발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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