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서울취재본부장] 국가를 유지해나가는 핵심 원칙으로 꼽히는 신상필벌(信賞必罰)이 지금 우리 공직사회에서 크게 도전받고 있다. 공(功)을 세운 자에게는 상(賞)을, 죄(罪)를 지은 자에게는 벌(罰)을 주되 공정하게 집행해야 국가의 기강이 유지되는데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의미다.

지난 한 해 나라를 큰 혼란에 빠뜨린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법적·도의적·행정적 책임을 지고 구속·파면·해임된 공직자는 없었다. 해경의 말단 현장 공무원 몇 명이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것이 전부다. 해양경찰청장, 해수부장관, 행정안전부장·차관도 6개월 이상 지난 한참 후에 조직개편 형식으로 교체돼 문책이란 느낌은 거의 주지 못 했다.

또 올 전반기 국민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던 메르스 사태에 대해서도 문책은 없었다. 사태가 수습되고 나서는 조직개편으로 오히려 승진잔치가 벌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상황까지 연출됐다. 적어도 사전대책 및 초기 대응에 실패한 질병관리본부의 장(長) 정도는 문책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정부는 몇 달이 지나도록 조치하지 않는 관대함을 보였다.

최근 전군 장병들에게 추석맞이 1박 2일 포상 휴가를 준 대통령의 단안은 상과 벌이 엄정하게 집행된 사례일까?

청와대는 "북한의 DMZ 목함지뢰 및 포격 도발 사건에 단호히 대응해 군사대비태세 완비에 전념하고 있는 장병들의 노고와 애국심 충성심을 치하하기 위한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군(軍)이 정말 정의롭다면 대통령의 이런 칭찬을 받기에 합당한 공이 있었지를 자문해보는 게 옳다.

북 도발 시 도발 원점과 지휘부까지 타격하겠다는 약속은 이번에도 지켜지지 않았다. 63만여 병사들을 속인 것이나 다름없다. 원점을 때리겠다고 누차 밝혔으면서도 엉뚱하게 논밭에 포격한 것은 기만행위다. 이런 자세로 병사들에게 뭐라고 얘기할 것인가.

또 대통령이 북이 도발하면 현장 지휘관이 즉각 대응할 것을 지시했음에도 이번에도 "쏠까요, 말까요?"라고 상부에 하명을 요청한 지휘관은 색출해 엄벌에 처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적이 우리 지역 내에 목함지뢰를 묻고 가도록 방치한 DMZ 내에서의 작전 실패 부분에 대해서 해당 부대장·사단장·군단장 등의 지휘라인 가운데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전투에 패한 지휘관은 용서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는 군의 엄정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전역 연기 신청 사병에게 취업 혜택을 베풀어 해당 기업들은 여론의 환호를 받았다. 그 이전에도 북의 도발 때마다 전역 연기를 신청한 사병들이 있었는데, 이들에겐 무엇이 주어졌던가를 대비시켜 보면 신상필벌의 공정성을 반추하게 된다.

며칠 전 군의 4성 장군 진급 발표가 나온 직후 국정감사에서 방위사업청이 F-35 전투기를 도입하면서 핵심기술 획득에 실패했다는 소식이 들려와 국민들은 분통을 터뜨려야 했다. 무기도입 비리는 캐도 캐도 끝이 없이 나오는데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난 방사청장은 아직 없었다. 엉터리 무기도입을 승인한 각 군 참모총장, 합참의장들도 서명한 값을 치러야 한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