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숙 열화당책박물관 학예연구실장] 나흘간의 추석 연휴 동안 예년과 다름없이 각종 사건사고가 잇따랐다. 으레 있기 마련인 교통사고는 그렇다 치더라도 소동을 부리는 각종 자살 사건들도 있었다. 물론 그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겠지만 그것이 그리 쉽게 목숨을 버릴 만한 중요한 사안인지 의구심이 간다. 한국이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기에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하는 저명인사들의 이야기가 더욱 아름답게 들린다.

간암이 뇌로 전이돼 시한부를 선고받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멋진 삶이었다. 수천 명의 친구를 사귀었고, 신나고 흥미진진하고 기쁜 삶을 살았다. 이제 무슨 일이 닥쳐오든 완전히 편안하며, 모든 것은 신의 손에 달려 있다고 느낀다"라고 한때 자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에게 스스로 다가올 죽음을 알렸다.

미국 출판계에서 '의학계의 음유시인' 혹은 '20세기 최고의 임상의학 저술가'로 통하는 저명한 신경과 의사 올리버 색스 박사는 인생의 끝자락에서 "아름다운 지구에서 산 것만으로도 큰 특혜였다. 이것이 삶의 끝은 아니다. 반대로 나는 살아 있음을 강렬하게 느낀다. 그 시간에 우정을 깊게 하고, 사랑하는 이들과 작별하고, 더 많이 쓰고, 힘이 닿는다면 여행도 하고, 이해와 통찰력을 한 단계 높이게 되기를 희망한다"라며 남은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겠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소아마비라는 신체적 불편함을 극복한 강영우 전 백악관 정책차관보는 췌장암으로 한 달 시한부를 선고받고 지인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허락된 시간이 많지 않다. 누구보다 행복하고 축복받은 삶을 살아온 제가 이렇게 주변을 정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을 허락받아 감사하다. 여러분으로 인해 저의 삶이 더욱 사랑으로 충만했고 은혜로웠다. 감사하다"고 차분히 말했다.

침샘암과 투병하던 최인호 작가는 그의 마지막 책에서 "그동안 명색이 작가랍시고 거들먹거리고 지냈음이 문득 느껴져 부끄럽다.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한다. 혹여나 이 책을 읽다가 공감을 느끼면 마음속으로 따뜻한 숨결을 보내주셨으면 한다. 그 숨결들이 모여 내 가슴에 꽃을 피울 것이다"라고 적고 홀연히 별들의 고향으로 떠났다.

무소유의 가르침을 실천한 법정 스님은 "사리를 찾으려 하지 말며, 탑도 세우지 말라. 번거롭고, 부질없으며, 많은 사람에게 수고만 끼치는 일체의 장례의식도 행하지 말라. 내가 죽을 때는 가진 것이 없으므로 무엇을 누구에게 전한다는 번거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우리 곁을 떠났다.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온갖 고난을 극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일군 이들은 자기 앞에 닥친 죽음조차 살아온 과정처럼 담담히 받아들이면서 그간의 삶에 감사하는 태도를 보인다. 죽음에 임하는 이들의 품위 있는 자세는 세상 탓에 너무 쉽게 생을 포기하려는 지금의 우리들에게 큰 귀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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