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오효진ㆍ전 청원군수

요즘 세상이 너무 어렵다. 그런데도 어려운 일들을 속 시원히 풀어야 할 정치권은, 본업은 내팽개치고 대선주자들한테 줄을 대며 그쪽에 매달려 온 힘을 쏟아 붓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같은 편들끼리도 다시 쪼개지고 갈라져서 다른 편을 헐뜯기에 바쁘다. 그러니 또 시끄럽다.

서민들 살아가는 일이 말이 아닌데도 책임지는 사람도 없고, 미안하다거나 잘못했다고 사과하는 사람도 없다.

모두 다 한 사람, 대통령만을 향해서 삿대질을 하며, 입에 담지 못할온갖 험담과 욕설을 퍼붓는다.

이 대목에선 공동 책임을 져야 할 정치인들도 일반 국민들과 별로 다를 게 없다. 모두들 한 목소리로 대통령을 비아냥 거리고 공격한다. 심지어 같은 배를 타고 온 사람들도 뒤돌아서서 한 술 더 뜨고 있다.

점잖은 사람이라면 이런 일을 눈을 딱 감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린 아이들이 또래끼리 놀다가 욕설을 퍼붓는 것을 보면 얼른 타일러야 할 어른들이다.

그런 어른들이 아이들 부끄럽게, 조무래기들도 안 할 부끄러운 일을 하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즐겁게들 놀고 있다.

물론 나라가 이렇게 된 것은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최고 통수권자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할 것이다.

나는 여기서, 너도 잘못했고 나도 잘못했으니 피장파장이라며 양비론(兩非論)을 내세워 초점을 흐리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사려분별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났나 그 단초를 살펴봐야 옳은 일이다.

지난 2002년 대통령 선거 때, 권력의 위압에 몰려, 또는 돈을 받고 어쩔 수 없이 특정 후보를 찍은 국민은 별로 없지 싶다. 또 2004년 탄핵에 뒤이어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 때도 대부분 자유스러운 의사에 따라 투표했다.

그러니 지금 뭐가 잘못 됐다면 나부터 탓해야 옳다. 그런데도 이제 와서 내 잘못은 쏙 빼놓고 너나없이 서로 남만 탓하면서 시간과 정력을 허비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해결책도 없고 전망도 어둡다.

우리는 잘 따져보지 않고 인기, 분위기, 지역감정 같은 것들에 휩쓸려 투표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성향으로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에 여당을 몰아줬고, 똑 같은 패턴으로 2006년 지방선거에서 야당을 몰아줬다.

오죽하면 프랑스의 석학 자크 이탈리가 그의 저서 미테랑 평전에서 "한국은 일반정치인과 국가원수를 구별할 수 있는 성찰이 필요하다"고 우리에게 충고를 했겠는가. 그는 같은 책에서 선거를 앞둔 우리에게 귀감이 될 만한 지침을 주고 있다.

그에 따르면 한 나라의 국가 원수는 다음과 같은 덕목을 갖춰야 한다.

즉, ① 나라 전체에 대한 깊은 인식과 국민에 대한 애정, ② 뛰어난 행정적 법률적 수완과 시대의 전략적 쟁점들에 대한 엄격한 분석, ③ 뛰어난 기억력,④ 신체적 저항력, ⑤ 적절한 품성, ⑥ 자기통제, ⑦ 예측 능력, ⑧ 도덕적 지표, ⑨ 실수를 인정하고 견해를 바꿀 수 있는 자세, ⑩ 세계에 대한 확고한 비전과 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더 보태고 뺄 게 있을 것이다.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바람직한 새 지도자를 뽑을 의식기반을 튼튼히 하는 일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시급한 일이다.

이번에는 휩쓸리지 말고 냉정해야 한다. 또 그랬다간 같은 일이 되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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