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순 메타바이오메드 상무이사]  재즈의 선율에 몸을 맡긴다. 저절로 머리와 몸이 분리된 듯 흔들거린다. 앞줄에 앉은 사람을 보니 목에 용수철을 단 인형이 생각난다. 음에 심취한 모습이려니 하다가도 한편 쑥스러워 뒷좌석을 살핀다. 아랑곳 하지 않고 무대에 열중하는 모습들이다.

공연히 또 나잇값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즐기자. 이 가을 문턱에서 호수변 무대가 얼마나 낭만적인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산책하고, 걸으면서 생각에 잠겼던 천호지에서 첫 번째 재즈스트리트 축제가 열렸다. 고즈넉하던 주변이 심장 박동을 유인하는 드럼과 키보드, 피아노, 색소폰 소리로 산책 나온 우리를 멈춰 서게 했다. 의자에 파고들어 무리와 어울려 한호와 박수로 즐기고 있는데 남편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가요무대를 즐기는 취향으로 보아 집에 가서 주말연속극 보는 게 낫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음이 몸으로 파고들어 세포를 하나하나 건드리는 느낌, '재즈는 바로 이 맛이야'. 무대 위에서 열정을 다해 연주하는 그들에게 아낌없이 내 영혼을 건네줬다. 아무 생각도 안 했다. 텅 빈 시간 속으로 뮤지션들이 들어왔다. 일상의 자잘한 소음들이 녹아내렸다.

올 봄에 업무적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말을 하고 싶었다. 설명되지 않는 여러 사안에 관해 묻고 싶고, 듣고 싶었다. 그러나 말은 또 다른 문제를 불러오고 오해를 일으키고 그래서 애초보다 더 어려운 쪽으로 문제를 끌어가기 일쑤라는 것을 이미 경험 한 터, 목젖이 아렸다. 그 때 아는 분이 아리랑을 배우러 다닌다는 말에 솔깃해졌다. 그분은 목소리를 교정하고 싶어 시작했다고 한다. 강의를 할 때에 소리가 작아서 고민이었는데 소리를 하다보면 목이 트이지 않을까 생각했단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아리랑 전수관에 가서 등록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동화가 생각났다. 말을 하고 싶은데 그 말은 못하지만 소리라도 고래고래 지르고 싶었다. 그래야 몸 안에 뭉친 것이 목을 통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악을 쓰며 아리랑을 부르는데 눈물이 나왔다. 안 쓰던 목을 쓰다 보니 노래 부를 때마다 사레가 걸렸다. 그렇게 나를 달랬다. 그리고 임원 계약 기간을 마친 후 내 사업장 한국커리어잡스에 복귀했다. 요즘은 노랫가락을 배운다. 여전히 청이 높아 목심줄에 핏대를 세워야 소리가 나오지만 이제 제법 소리를 꺾을 줄도 알고, 직선으로 올라가는 소리를 휘돌려서 부드럽게 하는 법도 배우고 있다.

사는 일은 무엇이든 닮았음을 또 경험한다. 소리를 하든, 유행가를 듣든, 재즈를 듣든, 그 안에는 삶을 적당히 내려놓고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흔들리는 것이 어떠한지 내게 말한다. 소리로 나를 다독이지 않고 그 스트레스를 그대로 안고 있었다거나, 되지 않은 소리로 말을 던졌더라면 어떤 결과가 생겼을까 생각해본다.

가을 노래라며 여기저기서 스마트 폰으로 보내주는 노래들을 틈틈이 들어본다. 노래를 들으며 설거지도 하고 차도 마시고, 멍하니 소파에 기대어 먼 산도 바라본다.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다 보면 내가 분명히 행복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내게 노래는 행복의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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