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공=김기형 김천대 교수] 오랜 세월을 산 것은 아니지만 20대와 40대의 삶을 비교해 보면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20대 때에는 내가 어떻게 자랐고 어떤 추억이 있었는지를 잘 느끼지 못하고 앞만 보고 살았던 것 같다.

앞으로 나에게 30대 혹은 40대가 온다는 것이 참으로 상상이 되질 않았다.

대부분의 청년들처럼 나도 항상 무엇인가를 성취해서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생각에 언제나 눈을 똑바로 뜨고 미래의 희망을 바라보며 현재를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이렇게 눈을 뜨고 열심히(?) 살다가 30대가 지나고 40대의 중반을 지나고 있다.

그런데 나에게 요즘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이전에는 생각하고 살지 않았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저녁에 퇴근할 때쯤이면 어린 시절 아이들과 저녁노을이 질 때가지 놀고 있을 때 건너편에서 '밥 먹어라' 하고 나를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비오는 날 점심에 아궁이에 연탄불을 꺼내서 삼형제가 둘러 앉아 먹던 김치볶음밥의 냄새도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양은 냄비 바닥에 붙어 있던 누룽지의 맛도 생각이 난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예전에는 내가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어머니께 여쭈어 보니 어머니께서는 '내가 나이를 먹고 있어서 그런 거다' 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정말 나이를 먹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전보다 옛날이 잘 기억이 난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욱더 잘 보일 수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현재를 살아가면서 불안해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미래가 짙은 안개 속에 묻혀있는 것처럼 보이질 않아 희망이 없다고도 말한다.
현대를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이러한 공허감을 느낀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절망적이어서 한 치의 희망도 보이질 않을 때 현대인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아마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절망에 사로 잡혀 잠을  못 이루며 생각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도 이러한 경험이 있고 지금도 문득문득 이러한 느낌이 나를 뒤덮을 때가 있다.

아무리 내가 눈을 똑바로 떠도 나의 미래가 보이지 않고 심지어 내가 살고 있는 현재의 모든 것이 아득히 멀게만 보일 때, 이제 나는 눈을 감고 내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본다.

그러면 눈을 감고 보는 모든 것은 선명해진다. 틈나는 데로 오래된 가보를 꺼내서 정성스럽게 만지셨던 할머니처럼 우리는 우리의 지나 온 삶을 추억해야 할 것 같다. 우리가 겪었던 삶이 즐거웠던 고통스러웠던 그 삶을 통해서 우리는 성장했고 지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이상 기온인지 가을인데도 낮에는 여름처럼 덥다가 밤에는 어느 덧 서늘해진다.

정말 가을이 올려나 의심이 든다. 정말 이 가을이 지나고 다음 달에 겨울이 시작될지 의심이 든다.

하지만 나는 눈을 감으면 이러한 의심이 들지 않는다. 지난 10월 나는 계족산 황톳길을 어머니와 걸으면서 도토리를 주웠고, 20년 전 11월에는 계룡산 낙엽이 쌓인 숲에서 첫 눈을 만났기 때문이다. 10월은 가을이고 11월은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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