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박광호 ㆍ 편집부국장 겸 사회부장

▲박광호 ㆍ 편집부국장 겸 사회부장
요즘 만화(漫畵)보는 재미로 산다. 직업이 머리를 많이 쓰는 직종이다보니 복잡한 게 싫어졌다. 그래서 아무 생각없이 무엇엔가 푹 빠져볼려고 택한 게 만화다.

만화는 지금 40~50대에게 컴퓨터 게임도 없던 어린 시절 동네 만화방에서 동전 몇 개 내고 죽치고 앉아 푹 빠졌던 놀거리였다.

당시 만화방에 가면 만화만 보는 게 아니었다. tv가 드문 시절이다보니 꼬마들의 인기를 독차지 했던 '배트맨'도 거기서 봤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빼놓지 않았던 연속극 '여로'도 그곳에서 뒷꿈치 들고 봤다. 그 생각을 하면 아련한 추억에 빠지곤 한다.

만화도 세월따라 많이 발전했다. 스토리도 탄탄하고 디자인, 색감도 좋아 한 번 손에 들면 좀체 헤어나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 내가 지금 뒤늦게 보는 만화는 1983~1984년 어느 팀도거들떠 보지 않던 만년 하위 야구선수들이 와신상담(臥腎嘗膽), 모든 야구팀을 깨면서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과정을실감나게 묘사 해 공전의 히트를 친 '공포의…'로 유명세를 탔던 그 작가 작품이다.

만화를 보면 참 그림이 기막히다. 사람을 그려도 어쩜 그렇게 잘 그리는 지 강한 남자를 표현한 걸 보면 기(氣)가 뿜어져 나오고, 예쁜 여자는 왜 또 그렇게 요염한 지 상상에 상상이 겹쳐 한 두 시간은 금방 간다. 이러니 만화를 한 번 잡으면 밤을 샌다는 게 이해간다.

그런데 지금은 굳이 만화방을 가지 않아도 만화를 볼 수 있다. 눈만 돌리면 사방이 만화같은 세상이다. 어느 재벌 그룹 총수는 아들이 밖에서 얻어 터지고 왔다고 조직폭력배까지 동원, 아들의 복수를 대신 해주다 지금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지금은 한 풀 잠잠해졌지만 이 사건은 한 때 껍데기를 벗길수록 속살이 드러나는 양파처럼 미처 몰랐던 사실이 드러나 세간의 주목을 끌었었다.수사를 처음부터 잘했느냐, 못했느냐를 따지면서 경찰간 내부 마찰을 빚더니 급기야 외압설까지 겹치면서 경찰청장의 사퇴 요구로까지 이어졌었다.

이에 대해 경찰청장은 "사퇴 못하겠다"며 당차게 나왔고, 청와대도 "사퇴할 일이 못된다"며 옆에서 거들어줬었다. 이른바 '경난(警亂)'이다. 만화보는 재미못지 않게 꽉 짜여진 스토리가 "내일은 또 무슨 일이 터질지…" 궁금증을 유발시켰었다.

몇 년째 끌어왔던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 총수 가족이 벌인전환사채(cb) 싸게 구입하기, 즉 헐값으로 회사 재산 사들이기가 끝내 불법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아직 2심(審) 결정이라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남았지만 회사 중역들이 알아서 싼 값에 회사 주식을 총수 가족에게 자진헌납했다는 건데 이 역시 만화보다 더 딴 나라 얘기같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지역에서는 '곰 고기 사건'이 있었다. 현직 군의회 의원이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곰 고기를 팔았는데 이 고기를 지역의 내로라 하는 기관, 단체장들이 잡쉈다고 한다. 물론 모르고 먹은 사람도 있겠지만 딴에는 좋은 것 먹겠다고 한 게 오히려 소화불량에 안 걸렸는지 모르겠다.

하기야 언론도 예외는 아니다. 본보와 관련된 일이라 말하기 남우새스럽지만 2년 5개월 만에 속간했더니 별의별 태클이 다 들어온다. 위기의식을 느낀 지역의 일부 기자들이 광고주에게 본보에 광고를 주지 말라고 생트집을 잡는다고 한다.

기사 갖고 경쟁을 벌이는 게 아니라 남 신문에 광고를 줘라 말라 압력을 넣는다는 얘기는 비록 길지 않은 언론경력이지만 처음이다.

노사분규로 인한 정간의 아픔을 딛고 속간하는데 따른 어려움을 어느정도 예상했고, 또 감수할 용의도 있지만 막무가내로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식의 치졸한 방법을 동원하는데는 할 말을 잊었다. 만화에서도 볼 수 없는 황당함이다. 만화를 만화책에서나 보고 싶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