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달준 유안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유달준 유안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우리나라 수입자동차업계는 이미 독일산 자동차의 판이다. 길을 다니면 독일 프리미엄 3사의 차를 하루에도 수 십대를 발견하곤 한다. 외제차를 타면 매국노와 같은 취급을 하던 1980∼90년대의 풍조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앞선 기술에 대한 동경과 고품질에 대한 신뢰가 한국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독일자동차업계를 뒤흔든 큰 사건이 벌어졌다. 이름부터 '국민차'라는 자동차회사가 만든 디젤자동차에서 발생되는 배출가스 중 공기오염의 주범인 질소산화물의 저감장치를 성능시험 단계에만 작동하도록 하고, 실제 운행할 때에는 작동하지 않도록 해 연비와 출력 향상을 도모한 것이다.
 
그 부작용으로 질소산화물은 테스트 당시보다 최대 40배까지 더 많이 배출이 돼 대기환경오염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는 이 사태에 대하여 발 빠르게 법적 대응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모 법무법인이 위 회사의 차량을 구입한 소비자들을 모집해 계약취소 및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고 한다. 최근 위 법무법인에서 한국 구매자들을 원고로 해 미국에서 손해배상소송을 냈다는 뉴스가 보도돼 눈길을 끌었다. 왜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징벌적 손해배상'을 구하기 위함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이란 민사재판에서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일 경우 제재적 차원에서 실제 손해에 대한 보상적 배상 외에 훨씬 더 많은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제도로서 주로 판례법 체계인 영미법계에서 시행되고 있다.
 
교묘하고 악의적인 방법으로 보험금 지급을 회피하는 보험회사에 엄청난 손해배상을 물리는 내용의 영화 '레인메이커'나, 소도시에서 전기사업을 하는 회사가 치명적 발암물질인 크롬이 포함된 수질오염물질을 몰래 배출한 것에 대해 막대한 손해배상을 부과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는 우리 법체계에서 인정되지 않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자동차회사도 미국에서 판매한 차량의 조향 너클이 부러져 운전자와 동승자가 사망한 교통사고와 관련하여 유족 측에게 700억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우리나라라면 어땠을까. 차량의 결함으로 사람이 사망한 경우에도 고작 위자료 1억에서 6000만원 정도가 판사의 재량에 따라 인정될 뿐이다.
 
기나긴 소송기간,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담스러운 비용, 그에 반해 만족하기 힘든 손해배상액 때문에 기업의 악의 또는 횡포에 피해를 입은 국민들은 스스로 소송할 엄두도 못내고 포기하기 일쑤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 기업 다 망하지 않겠느냐고. 그렇지만 '기업 윤리'는 '기업 성장'과 대척점에 있는 개념이 아닐뿐더러 포기할 수 있는 가치도 아니다.
 
세계최대의 시장인 미국에서 선전하고 있는 우리나라 기업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기업하기 편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과 기업의 악의적 잘못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것은 양립불가한 것이 아니다. 자조 섞인 신조어 '호갱님'을 만드는 기업을 더 이상 용인하고 싶지 않다면 징벌적 손해배상의 도입을 진지하게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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