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웅 수필가] 하늘은 높푸르고 오곡백과 익어가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계절이다.

며칠 전 모임이 있어 다녀왔다.

낮에 여러 가지 활동을 해서 좀 피곤했지만 갈 때는 운동 삼아 걸어서 갔다. 승용차를 타고 갈까 하다가 회원들과 어울리면 반주라도 하게 되니 그냥 가는 것이 더 자유롭다.

복잡한 시내에서 주차도 어렵고 운동도 해야 되니…

즐거운 모임을 마치고 시내버스를 기다렸다. 30여 분 걸으면 되는 거리이지만 좀 피곤해 무리하는 것은 건강에도 좋지 않기에 버스를 타기로 했다.

여러 버스노선이 있지만 동부종점 가는 버스를 탔다.

저상버스인지 운전석 부근 앞쪽에는 좌석조차 없어 뒤쪽으로 가려니 어떤 아가씨가 일어나며 자리 양보를 하기에, "난 괜찮아요. 그냥 앉아서 가요" 하고 사양했지만 자꾸 앉으라 하기에 '금방 내리는 사람인가?'생각하며 고마움을 표하며 자리에 앉으니 내 바로 옆에 서있었다.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 여러 상념에 잠겼다.

'내가 벌써 자리 양보를 받을 때가 되었나! 아직 마음은 청춘인데….'

낮에 바쁘게 돌아다니다 모임 시각에 허겁지겁 맞춰 가느라 땀 냄새도 나고, 더구나 약간이지만 술을 마셨기에 냄새도 풍길 것 같아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였다.

다시 앉으라고 하고 싶고, 내릴 곳도 아닌데 미리 내리고 싶기까지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3년 전에 정년퇴직도 했고, 어르신 무료 독감 접종 안내문도 받았으니 나도 노년에 포함되는 것일까?'

생각하며 옆에 서 있는 아가씨를 바라보니 참으로 성실하게 보였다.

마치 세종 정부청사에서 근무하는 작은딸 같아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정류장을 하나하나 통과하다보니 내가 내릴 농협 동청주지점에 도착해 내리려니 그 아가씨도 앞서 내렸다.

마침 ○○제빵도 부근에 있으니, 고마운 뜻에서 빵이라도 좀 사주고 싶었지만, 공연히 오해를 받을 지도 몰라 말도 하지 못하고 생각으로만 그쳤고, 내릴 때 고맙다는 인사조차 못하고 말았다.

'그냥 인사라도 하고 가게할 걸' 생각했지만 이미 늦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고마운 그 여자분 생각이 나서 아내에게 이야기하니 "참 예의바르고 착한 사람인가 봐요. 지난주 강원도 횡성에서 술을 마시고 차를 운전하려는 것을 말리는 아버지를 둔기로 때려 숨지게 한 뒤 집에 불을 지른 30대 아들이 경찰에 붙잡히는 끔찍한 일도 있었다는데".

이 모두 함부로 불뚝성을 부린 결과다. 너무 부끄럽고 슬프다.

만약 아버지가 좋지 않은 것을 시켜도 그렇게는 못할 텐데…….

인륜(人倫)과 도덕과 양심이 지켜지고 살아있는 사회가 그립다.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한 사소한 행동이 잔잔한 기쁨과 감동을 주듯이, 한 사람의 사랑과 선행이 이웃에게 힘과 용기를 줄 수 있고, 정겹고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디딤돌과 자양분이 될 수 있으니, 작은 선행이라도 나부터 앞장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그 아가씨가 깨닫게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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