⑭ 노영우 청주소망의 집 원장
하지만 모두가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존경할 수 있는 것은 쉽지 않다. 민족,사회문제에 항상 고민하며 힘들고 고통속에 살아가고 있는 이웃에 관심과 실천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주중동 382-6 청주 소망의 집 노영우(63·사진) 원장. 그는 수십년간을 시민사회운동과 통일 운동, 사랑과 봉사 등 위보다는 아래를 보며 고민하며 실천하고 있다. 그는 민주와 공산진영간 치열한 대결의 상징인 월남전에 30여개월 다녀온 참전 용사이다.
노 원장은 어릴적 부터 신학 공부를 한 목회자로 모든일에 사랑과 열정으로 임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그동안 해온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며 지금도 젊은이 못지 않은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노 원장은 이와함께 사회복지법인 운영을 맡고 있으니 그의 폭넓은 활동과 진면목을 알 수 있다. 노인전문요양시설은 자연스럽게 '나누면 즐겁고 행복하다'는 생각이다.
노 원장이 서울과 대전 등에서 활동을 하다 고향인 충북으로 온 것은 20여년전 일이다. 그의 경력을 보면 존경심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자신을 위한 삶보다 이웃,민족을 위한 역할과 자세가 가득하다.
요즘처럼 자신만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엷어지는 시대에 그를 보면 존경스럽다. 노 원장은 초등학교때 부터 다닌 교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서울과 대전, 충북에서 수십년간 시민사회운동과 민주화, 지역현안 추진 활동,우리민족의 숙원인 통일 운동 등 각 분야에서 매진해 왔다.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다. 체질적으로 불의를 참지 못했고 어렵고 고통을 당하는 것에 마음이 아팠다.
이는 자연스럽게 인권,불우이웃과 사회문제, 통일,교육 등에 관심을 갖게 됐다. 생각만 한 것이 아니고 행동하는 양심이었다.이는 자신을 위한 삶 이기 전에 우리나라,우리민족,불우이웃,약자에 대한 자연스런 관심과 열정으로 이어졌다.
때로는 정의를 위해 거리에서 목소리를 높였으며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과 함께 조직을 결성해 행동 했다.우리사회,우리민족이 한발짝 성숙하고 진전하며 발전하는데 보람을 느꼈다.
서울,대전, 충북지역을 오가며 전개한 역할을 보면 그의 삶의 가치를 알 수 있다. 어릴적 부터 접하고 공부한 목회활동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수많은 협의회,선교 활동과 전도사,장청활동, 농민회활동, 장로 출판사 일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특히 주목할 것은 그의 사회활동이다.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에 걸쳐 해 왔다. 격동의 우리 현대사에서 노 원장이 관여한 곳은 한 둘이 아니다. 시민사회단체의 대표를 맡아 활동한 단체는 현재까지 40개에 가깝다.
70~80년대 굴곡의 시대 외침과 지역의 현안 해결을 위한 관심과 열정 등이다. 충북민주화운동협의회 공동의장, 제 2건국추진위원회 중앙위원, 새교육공동체 초대 공동의장,오송국제바이오엑스포 범도민지원협의회 위원, 충북도 로스쿨유치원원회,6월 민주항쟁 20년 사업추진위원회 공동대표,충북광장포럼 고문,충북 건국6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 등 실로 다양하다.
이중에 지난 1999년부터 현재까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는 각별하다. 이 단체는 지금 나름대로 왕성한 활동에 신뢰를 쌓고 있으나 어려웠던 초창기에 남다른 힘을 보탰다.사실상 오늘날 이 단체를 정착시킨 주인공이나 다름없다.
이밖에 노 원장이 적극적으로 활동 하는 것은 통일 운동이다. 현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부의장을 맡고 있다.
노 의장은 6살때6.25를 맞아 부친이 전쟁통에 작고, 어렵게 자랐다. 이때문에 통일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다. 통일의 방법에 대해서 의견이 다를 수 있으나 당위성은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이다. 나름대로 철학도 갖고 있다. 북한도 여러번 다녀왔다. 요즘 남북관계가 경색돼 못내 안타깝다. 하루빨리 관계가 회복 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노 원장은 그동안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충북상임대표,평화통일연대 상임대표,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충북본부 상임대표 및 중앙운영위원, (사)남북나눔공동체 회원, (재)남북평화재단 중앙의원,(사)남북누리나눔 상임대표,(사)평화를 만드는 사람들 이사, 충북도 남북농업교류협력위원회 위원 등 관련하는 곳이 수십곳에 달한다.
현재 원장을 맡고 있는 청주 소망의 집은 2006년 개원했으며 치매,중풍 등 노인 55명이 전문인들의 간호를 받으며 노후를 보내고 있다. 노 원장은 "천성적으로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움직이며 무슨 일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며 "목회와 봉사,시민사회단체 활동과 통일 운동이 앞으로 조금만 밀알이 되면 인생에서 큰 보람으로 여겨질것"이라고 말했다. 노 원장은 청주가 고향으로 부인 이정희씨(58)와 1녀 2남을 두고 있다. 청주남성초,청주사범병설중,청주공업고등학교,대전신학대학을 졸업했다.
/이재기기자
<학력>
■청주남성초등학교 (1957년)
■청주사범병설중학교 (1960년)
■청주공업고등학교 (전기과 1964년)
■대전신학대학 (목회학과 1975년)
■장로회신학대학원 (목연과 1977년)
■동아인재대학(복지전문학사 2003년)
■대불대학교 (사회복지학사 2005년)
<주요경력>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충북상임대표 (1998~2003년)
■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의장 (1996~2004년)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공동대표
(1998년~현재)
■충북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 (2005~2008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부의장 (2005년~현재)
■6.15공동선언충북본부 상임대표 (2005년~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