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서울취재본부장] 국사교과서 논쟁이 전국을 뒤덮고 있다. 경제살리기와 청년일자리 창출, 4대개혁 등 현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였던 의제들은 홀연히 사라져버렸고, 그 자리엔 국정화 논쟁이 들어섰다.

가히 역사전쟁을 넘어 ‘역사대전(大戰)’이라고 표현해야 할 만큼 여-야, 보수-진보가 천하를 걸고 건곤일척의 총력전을 벌이는 형국이다.

먼저 국정화를 선언해 불을 당긴 정부와 여당은 선공(先攻)의 잇점을 누리지 못하고, 진보진영의 강력한 반격에 부딪쳐 주춤하는 형세다.

그만큼 정부여당의 국정화 추진은 준비가 부족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너무 상대를 만만히 본 것인지, 또는 사안의 중차대함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인지 모르지만, 국정화로 국론이 양분될 것을 내다봤다면 이렇게 혼란스럽지는 않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있다.

국민 여론도 처음엔 찬성이 높았지만, 지금은 오차범위이긴 하지만 역전됐다. 또 진보진영이 던진 ‘국정화는 친일 독재, 검인정은 다양성과 창의성’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것도 실책이다.

국정화를 느닷없이 선언하기 전에 현행 중·고교 근현대사 교과서가 얼마나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지, 정말로 대한민국이 태어나서는 안 될 나라라고 기술하고 있는지, 그 해악이 무엇인지를 먼저 명백하게 밝혀서 국민에게 알리는 일을 선행 했어야 한다.

그리고 검인정을 강화하는 방식으로는 왜 해결이 안 되는지도 설명해 뭐가 뭔지 잘 모르는 대다수 국민들로부터 이해와 공감을 얻었더라면 국정화 반대 논리를 쉽게 주저앉힐 수 있었을 것 아닌가.

대전이라고 불릴만큼 큰 반향을 몰고 올 사안임에도 교육부 장관부터 설명과정 없이 발표에 급급한 인상이어서 얕 보였다.

추진 주체세력은 '역사적 사명'만 갖고 있었지, 실행 전략은 주먹구구에 불과했다. 국정화는 창의와 다양성을 규제하는 권위주의 시대의 산물이라고 국정화를 무조건 반대하고 정치 쟁점화 하는 야당의 주장도 설득력이 약한 건 마찬가지다.

진보 진영의 말대로 검인정 체제가 역사교육의 다양화를 가져다 주지는 못했다. 소수의 진보 집필자들이 두 개, 세개의 역사교과서에 집필자로 참여한 사실이 국회자료에서 드러났고, 내용도 대동소이해 싸잡아 ‘종북 교과서’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 자명하다.

마침 야당이 일명 "현행 근현대사 교과서의 내용에 정말로 문제가 있는지를 검증하자"고 제안했으니 이제라도 누구 말이 맞는지 따져보면 될 일이다.

그래서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자녀가 어떤 교과서로 역사교육을 받고 있는지, 하나하나 끄집어내 밝은 햇빛에 비춰봐야 한다.

이를 통해 "과연 문제가 있군"이라는 공감을 이끌어 내면 아무리 반대가 거세더라도 돌파해야 할 일이고, 공감을 못 받으면 접어야 한다.

정부 당국이 주장대로 현행 중고교 역사 교과서가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아야 할 나라이고, 국가의 정통성은 북한정권에 있는 것으로 묘사해 자라나는 세대에 우리 역사에 대한 자부심과 정체성을 대신에 부정적 인식을 심어준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누구도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를 막을 방법과 명분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이라고 해도 보는 시각에 따라 달리 인식하기 때문에 현행 교과서 내용을 검증하는 일 자체가 새로운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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