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혜영교수

‘킹콩’은 1933년 처음 영화로 만들어진 이래로 여러 차례 리메이크 될 정도로 매번 새롭게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거대한 킹콩과 여인의 사랑을 테마로 한 괴기 영화의 고전이다. 피터 잭슨 감독이 만든 ‘킹콩(2005)’의 최근 버전은 3시간의 긴 상영 동안의 웅장한 화면도 인상적이지만 나에게는 무엇보다 킹콩이 남긴 한 마디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킹콩의 원래 이름은 콩이다. 자신의 고향에서 늘 높은 절벽 꼭대기에 홀로 고독하게 있는 위엄 있는 자태가 왕의 모습이어서 ‘킹콩'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작품에서 야심적인 감독 칼 던햄은 여배우 앤 대로우와 시나리오 작가 잭 드리스콜과 함께 지도에도 없는 섬에 촬영을 하러 갔다가 그만 원주민들에게 붙잡히게 되고 앤은 킹콩에게 제물로 바쳐지게 된다.
칼 던햄은 킹콩이 반한 앤을 미끼로 킹콩을 포획해 와서 대도시의 극장에서 대중들의 흥밋거리로 삼는다. 인간의 세계로 추락한 야수의 왕 킹콩은 자신을 채운 쇠사슬을 부수고 거리로 뛰쳐나오고 거리에서 재회한 앤을 손에 안고 빙판 위에서 얼음 가루를 날리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킹콩은 자신을 해치려는 총격을 피해 앤을 손에 안은 채 도심의 가장 높은 빌딩 꼭대기로 올라간다. 킹콩의 유일한 대사는 바로 이 장면에 나온다.
엄밀하게 말하면 킹콩의 대사는 아니고 그의 눈빛과 손짓을 보며 앤이 킹콩을 대신해준 대사다. 뉴욕의 가장 높은 빌딩 꼭대기의 난간에 걸터앉은 킹콩은 자신의 손에 안긴 앤과 마주하며 막 떠오르려는 태양에서 번져 나오는 황금빛 광선과 붉게 물든 주변 하늘을 응시하며 무엇인가 말하고 싶은 듯 손을 자신의 가슴을 갖다 댄다.
이때 앤은 킹콩의 마음을 들여다본 듯 “beautiful?”이라고 그를 대신해 말해준다. 도심의 가장 높은 빌딩의 꼭대기에 올라앉아 아침햇무리를 바라보고 있던 킹콩은 과연 무엇을 아름답다고 느낀 것일까?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도심에서도 변함없이 볼 수 있는 저 붉은 하늘이 ? 자신의 왕국에서 뿌리 뽑혀 인간의 세계에서 어릿광대처럼 놀림감이 되고 위엄을 박탈당한 킹콩이 인간의 해를 피해 인간 세상의 꼭대기에 앉아 앤을 손에 안고서야 되찾게 된 먼 곳에 남겨두고 온 자신의 잃어버린 낙원이? 아니면 사랑하는 앤을 자신의 손 안에 안은 채 서로 마주보며 이 순간을 함께 하고 있음이 ? 어쩌면 이 모든 것이? 곧 공중에서 가해질 폭격으로 최후를 맞이하게 될 킹콩이 앤과 함께 나눈 순전하고 결정적인 ‘카이로스’적 순간이 킹콩의 마지막 마디에 응축되어 있다. 혹은 킹콩을 대변해 앤이 하고자 한 말은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었던 거대한 덩치의 킹콩의 우수어린 눈빛에서 문득 우아하고 고귀한 기품을 보게 된 앤 자신의 고백인지도 모른다.
인간들에게 조롱당하고 목숨까지 잃게 되는 처지조차 그녀에 대한 기꺼이 감내하는 킹콩을 보며 미안함과 감사, 아픔과 연민, 한없이 위하고픈 어떠한 말로도 담아내지 못할 감정을 느꼈을 앤의 모습에는 ‘오페라의 유령’의 눈빛에서 고독과 사랑의 아픔을 읽어내는 크리스틴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킹콩의 유언은 미학자 故마리 클레르 로파르스가 전해주는 예술의 유언을 상기시킨다. 이 미학자는 자신의 유작 맨 마지막 줄에 “낯섦이 예술이 남긴 마지막 말이다”라고 썼다.
예술이 남긴 유언, 그것은 어쩌면 죽음을 앞둔 킹콩이 동틀 무렵의 하늘빛에서 순간 깨닫게 되는 아름다움, 킹콩의 눈빛에서 앤이 문득 발견하는 숭고함과 같이, 평생 귀기울여온 예술에게서 미학자가 마지막 순간 새삼 느끼는 낯설고 신선한 충격에 대한 고백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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