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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문화도시의 상징 청주 첫 공립학교② 청주 주성초등학교, 민영은 초대교장
김헌섭  |  news@ccdail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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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8.12.11  19: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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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8회 인천 월미도 여행기념 사진.

◀ 청주에 처음으로 세워진 공립학교
청주 주성초는 개화된 학교 교육이 시작되던 무렵인 1907년 5월6일 청주공립보통학교로 문을 열었다. 청주에 처음으로 세워진 공립학교로 기록된다.
주성초 학생들은 일제가 근대적인 학교 제도 도입이라는 명분 아래 민족 사상 말살을 위한 동화 교육, 우리 말을 쓰지 못하게 하고 일본어를 국어 과목으로 하는 등 식민 교육을 악랄하게 실시하는 바람에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며 교육을 받아야 했다. 매사 일본인들의 눈을 피해야 했고, 한국인 교사와 은밀한 교감으로 저항 의식을 기르며 말과 글을 잃지 않았다.
중학교에 진학한 청소년의 몸으로 3·1운동에 가담했고 옥고를 치른 학생도 있었다. 1920년대 학교와 지역 유지들을 중심으로 성금을 모아 강당을 신축했을 뿐 아니라 교사를 증축하고 교지 확장에 큰 도움을 줬다.
청주군수로 초대 교장을 겸임한 민영은씨, 청석학원 설립자 김원근씨, 방인혁씨, 충북지사를 역임한 이명구씨, 초대 도의장을 역임한 최동선씨, 적십자 지사장을 역임한 박 철씨 등이 대표적인 원로라 할 수 있다. 주성초가 위치한 곳은 충북 교육 문화의 발상지이자 교육 문화 유산이 집결돼 있는 주성초 인근은 교육 공원으로 조성돼 천년 고도 교육문화도시 청주의 상징이 되고 있다.
▲ 민영은 초대교장 (1907년)
◀ 교장 취임 하룻만에 일본인으로 교체
주성초는 긴 역사가 말해주 듯 우여곡절도 많았다. 1910년 8월28일 4대 신창휴 교장이 취임했으나 하룻만인 다음 날 5대 일본인 岩重善太郞이 교장으로 취임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한·일 합병 관제가 발표돼 한국인 교장을 해임하고 교감이 그 사무를 겸임하게 돼 교감제가 폐지되면서 일본인 교감이 교장으로 임명됐다.나라를 잃은 다음해인 1911년 4월1일 졸업생 32명을 첫 배출하면서 동창회도 조직됐다.
같은 날 현재의 교동초인 사립보성학교 남학생을 편입했고, 보성학교는 보성여학교로 개편됐다. 이듬해인 1912년 3월22일 2회 졸업식에서 31명이 졸업하면서 졸업기념 거울 1점이 기증됐다. 현재도 박물관에 보존돼 있다.
1913년에는 최초로 여자 졸업생(서정임)이 배출됐고 유지의 도움으로 교사 1동이 증축됐다. 1922년 학급 수가 급격히 늘어 학생 모두를 수용하지 못해 현재의 중앙초인 일본인 소학교 또는 향교 등에서 수업을 받도록 하는 등 어려움을 겪어 청주시 상당구 영동 83번지 현 위치에 12교실을 신축해 남자는 신축 교실에서, 여자는 옛 교사에서 수업을 받았다.
1923년에는 지역 유지인 민영은·방인혁·김원근 선생 등 수십명의 기부금과 충북선 철도 부설 공사를 하던 청수조합의 특별 찬조로 현재 주성교육박물관 건물로 사용되고 있는 120평 규모의 강당이 신축됐다. 1929년에는 이광익 선생이 도안하고 뜻을 정리한 '교포(校標)'가 확정됐다. 1931년에는 예전 주성초 정문 앞에 놓여져 있던 다리 '육영교'가 준공됐다.
▲ 주성교육 박물관 개관 (2001년)

◀ 6·25전쟁 때 두차례 휴교
1933년에는 여학생들이 청주 제2보통학교(현 교동초)로 이관되고 교명도 남학생만 수용하는 청주 제일보통학교로 변경됐다. 1937년 11월7일 영정(榮町)공립보통학교, 1938년에는 청주영정공립심상소학교, 1941년 청주영정공립국민학교로 바뀌었다.
1945년 폐교된 사립 대성학교 학생을 편입해 3학급이 증설됐지만 일제 교육 폐막으로 임시 휴교됐으며 주성공립초등학교로 교명이 변경됐으며, 1회 졸업생인 이중갑 교장이 취임하기도 했다.
이듬 해 조선공립국민학교로 재 개교했다.1947년에는 박철 작사 한광수 작곡의 교가도 제정됐다. 1948년과 1949년에는 청주주성공립국민학교와 청주주성국민학교로 교명이 바뀌었다. 1950년 7월4일 6·25전쟁으로 문을 닫았다 같은 해 10월25일 재 개교됐으나, 1951년 1·4후퇴로 휴교됐다가 같은 해 3월15일 다시 문을 열었다. 1957년 개교 5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1959년 8월1일 수도가 가설됐고, 양호실과 어린이 은행이 설치됐다. 1967년에는 문교부에 의해 반공도덕 연구학교로 지정됐으며 이듬 해는 교육부 지정 시범학교 운영발표회를 갖기도 했다.
1996년 주성초등학교로 개명, 1997 ~ 1998 교육부 지정 열린교육 시범학교 운영, 2001년 '주성교육박물관' 개관, 2001 ~ 2002년 청주교육대학교 대용 부설초등학교, 2007년 5월6일 주성초등학교 개교 100주년 축제를 거쳐 2008년 2월18일 97회 졸업을 배출하면서 총 졸업생이 2만4701명에 달하게 됐다.
◀ 각계 인사 다수 배출
주성초 졸업생중에는 역사와 전통을 대변하 듯 각계에서 많은 인사가 배출됐다.<주성교육 100년사 참조>
▲정칟행정분야 = 이의영(14회)·신면식(16회)·오범식(22회)·최병길(〃)·신관우(28회)·정태성(〃)·신범식(31회)·윤석민(40회) 국회의원이 있고 최동선 충북도의회의장(8회), 한정구 청주시장(21회), 서병주 충북도의회의장(23회), 지헌정 청주시장(34회), 김광홍 충북도부지사(39회), 유근하 교육부 관리관(40회), 이정숙 청주시 흥덕구청장(49회)
▲학문·교육 분야 = 이중갑 주성초 15대 교장(1회), 김준철 청주대학교 총장(25회), 정인영 충북도교육감(32회), 유성종 충북도교육감(34회), 이택원 충북대학교 총장(35회)
▲군인·경찰 = 송해준 충북·전남지방경찰청장(39회), 전석인 육군 준장(49회), 이준세 육군 준장(52회), 김일수 해병대 소장(53회), 권명국 공군 준장(56회)
▲산업·경제 = 이지영 남한제지사장(14회), 김재헌 충북은행장(26회), 박문복 백학소주 사장(27회)
▲김성수 한국도자기 회장(49회)
▲문화·예술 분야 = 정창섭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장(28회), 김수현 방송극작가(44회)
▲ 언론 = 박성범 충청일보 사장(17회), 송경호 충청일보 편집국장(27회), 이상훈 충북일보 회장(39회), 정기평 포함mbc 대표이사(56회), 김영일 충청타임즈 사장(〃).
/김헌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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