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사색 곽의영 전 충청대 교수] 어느새 가을이 떠나가려 한다. 11월에 서면, 왠지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던 위대한 성악가 '프랑코 코렐리'가 그리워진다. 프랑코 코렐리(Franco Corelli·1921~2003)는 이탈리아 안코나 출신으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엔지니어링을 공부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친구의 권유로 페사로(Pesaro) 음악원에 입학해 음악교육을 받게 됐으나 발성 과정에서 고음이 나오지 않아 석달 만에 그만 두고 말았다.

이에 실망한 그는 성악을 포기하려다, 새로 마음을 가다듬고 카루소 베냐미노 질리, 라울리 볼피 등 유명 성악가들의 레코딩을 들으며 연습에 매진했다. 그 결과 코렐리는 1950년 피렌체 5월 음악제가 주최한 콩쿠르에서 1위를 하고, 이듬해 플로렌스의 마지오 뮤지칼레에서도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코렐리는 1951년 스폴레토 음악제에서 카르멘의 '돈 호세' 역을 맡아 성공적으로 오페라에 데뷔했다. 그 이후 1958년 소프라노 비르기트 닐손과 투란도트 공연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떨쳤으며, 1960년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 진출해 최고의 명성을 얻었다.

코렐리는 20세기를 대표하는 그야말로 드라마틱 테너였다.

드라마틱 테너란 '남성 성악에서 가장 높은 음역의 테너 중에서도 음색이 깊고 힘이 넘치는 가장 무거운 영역의 테너'를 말한다. 코렐리의 열창(熱唱)을 들어보면 매우 우렁차고 풍부한 성량으로 힘있게 고음을 처리하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부드럽고 따사로우면서도 풍요로운 감정을 표출하기도 한다.

게다가 그는 큰 키와 늘씬한 몸매에 잘 생긴 외모에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노력하는 성악가였다. 언젠가 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자면서도 노래를 부릅니다. 꿈 속에서도 음표를 보죠. 나는 항상 자신을 좀 더 향상시키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결코 휴식이란 없습니다."

모든 음악은 장르에 관계없이 삶과 애환(哀歡)을 담고 있으며 즐거움과 위안 그리고 감동을 선사한다. 특히 성악의 경우는 깊은 울림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음악으로, 지친 삶을 위로하고 긍정적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삶의 자산이다.

오늘도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엄청난 성량과 격정적인 정열로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 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를 부르는 그의 노래를 들으며, 행복한 마음으로 삶의 깊은 내면에 빠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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