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현숙 열화당책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정현숙 열화당책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예술가는 창작활동을 하지 않고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사람이라 평생을 거기에 몰두한다.

그러나 생의 마지막에는 자신의 화신인 예술품들을 어떻게 정리할 것이냐가 그의 숙제다.

후손이 잘 보존한다면 그는 그나마 복 받은 사람이지만 반대로 후손에 의해 작품이 흩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들어 지자체들이 지역민들에게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 그 지역출신 작가의 작품을 기증받아 미술관이 건립하는 것이 성행하고 있다.

이런 형태로 결실을 맺은 미술관이 충북 보은에 들어선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보은 출신 재미 한국화가 이열모 화백이 미술작품 268점, 미술 관련 도서 446권, 작품 도구 등 모든 소지품을 고향에 기증하기로 했고, 정상혁 보은군수는 10월 초 LA에서 그와 기증협약을 하고 기증품을 인수했다.

한국의 실경산수화를 그리는데 평생 헌신한 팔순을 훌쩍 넘긴 노화백의 바람이 이루어져 그는 지금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다는 말로 그 감동을 전했다.

충북의 빼어난 산수와 그것을 화폭에 담은 실경 산수화가, 그리고 그의 고향에 세워질 미술관, 참으로 그림 같이 아름다운 이야기다.

이열모는 한국화가 장우성의 애제자로 지금의 이천시립월전미술관이 존재하게 한 장본인이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맺어진 사제의 인연은 반세기나 이어졌고 스승을 위한 제자의 보필과 헌신은 지금도 미술계의 미담으로 회자되고 있다.   

미술관 건립 소식을 접한 나의 감회도 남다르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재직시 기획한 '20세기 한국수묵산수화'전 개막식 날인 2011년 9월 16일이었다.

그는 전시 출품작가 21명 중 1명이었는데,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LA에서 한 걸음에 달려왔다.

그는 그 전시를 그만큼 중요하다 여겼고, 그 만남이 보은에 들어설 '이열모미술관'의 씨앗이 되었으니 그는 스스로 복을 지은 셈이다.

2012년은 스승 장우성 화백의 탄생 100주년 되는 해였다.

나는 그것을 기념하기 위한 전시로 자타가 공인하는 1호 제자인 이열모전을 기획 중이었고, 그는 나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것이 2012년 9월 20일 이천시립월전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팔순전이었다.

나는 미술관을 그만둔 후에도 기획 당시 그와 했던 작가 탐방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2012년 6월  LA로 날아갔다.

먼 타국에 있는 노작가의 화실 탐방이 나에게 아름다운 추억 그 이상인 것은 그 전시를 계기로 동향인 정상혁 보은군수를 만나게 되었고, 그 결과 '이열모미술관'이 탄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보은군은 평생 그린 소중한 작품들을 선뜻 기증해 준 이 화백의 뜻을 받들어 빠른 기간 내에 미술관을 건립해 보은을 문화예술이 살아 숨 쉬는 고장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보은이 낳은 이열모 화백의 예술정신이 그의 고향에서 영원히 살아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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