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집을 떠나면 비가 오고 집으로 돌아오면 비가 그치는 것처럼 하는 일마다 엇갈리고 가는 곳마다 뒤틀리는 경우가 있다. 그가 왔을 때에는 내가 그곳에서 떠나 버렸고 저 곳이다 싶어서 자리를 옮기면 텅 빈 수레 뿐이다. 그리고 내가 지나왔던 뒷길에서는 타인들만이 결실의 기쁨을 느끼는데 홀로이서 쓸쓸하게 서 있는 나그네의 모습이 있다.

그래서 내가 갔을 때에는 그가 내 집으로 와있었고 내가 돌아 왔을 때에는 그가 가고 없는 빈자리이다. 또 너무나 급하게 가는가 싶어서 조금 천천히 가면 먼저 왔던 사람들이 가고 없는 빈자리가 남고, 너무나 느리다 싶어서 조금 서둘다 보면 이번에는 너무 빨라서 아무도 없다. 이제는 기다려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정처 없이 기다려 볼지라도 하염없는 세월만이 그렇게 흘러가리다. 이처럼 머물다가 홀연히 떠나가는 자리에서 미풍으로 흔들리는 나뭇가지와도 같은 인생이 도대체 무엇일까? 그러면 지금 무슨 일을 어떻게 하여야만 좋겠는가?

무릇, 오르는 것에는 반드시 순서가 있고 자라나는 것에는 반드시 이치가 있으며 넓어지는 것에는 반드시 원리가 있으리다. 그리고 돌아오는 것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고 얻어지는 것에는 반드시 댓가가 있으며 귀(貴)해지는 것에서는 반드시 가치가 있으리다.

인간사에서 서둘러 떠나는 사람은 놓고 가기가 쉽고 뒤늦게 떠나는 사람은 도달하기가 어려운 것처럼 서둘러야 할 일에서는 느긋하고 천천히 가야할 일에서는 급하기만 하다고 하니 이것을 어찌하여 역회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떠나왔던 곳에서는 아름다운 꽃망울을 터뜨리고 되돌아갔을 때에는 견빙에 서리가 된다하니 이것을 어찌하여 불위(不位)이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태고(太古)의 시절부터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손들을 이곳에서 보았지만 길을 떠나 갈 때에는 희망의 콧노래 소리가 들리더니 돌아오는 길에서야 시름의 소리가 엔 말인가 싶더이다. 그러하니 이것저것을 살펴서 부족한 것도 보고 빠뜨린 것들도 봐야하지 않겠는가? 부질없이 바삐 움직이지 말고 구할 만한 것들을 구해서 다음 길을 재촉하리다. 그러나 길손이여! 사바세계가 수 천 년의 세월이 흘러 왔을지라도 아직까지 완벽한 이가 드물고 부족한 이가 많다는 것을 배웠을 뿐이니 바삐 가시는 길손이여 부족한 것은 구해서 가고 남는 것들은 그곳에다가 놓고 가도 좋을 듯싶다네. 행여 다른 길손 중에서 꼭 필요하다 싶으면 길손께서 주고 갔노라고 말을 하오리다.

부족한 것은 부족하기에 부족한 곳에서 가벼울 테고 많은 것들은 많은 곳에서 무거울 터이니 적당하다면 그곳에서 기쁨이 있지 않으리까? 그렇다고 길손께서 애태워 고민할 것은 없소. 하늘을 바라다보면 채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 것이고 땅을 내려다보면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 것이요 길손이야 본래부터 영명(英明)함이 있었으니 천지간(天地間)에서 능히 깨달을 수가 있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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